학창 시절 떠돌던 흉흉한 괴담 중에 '666' 괴담이 있었다.
악마를 상징하는 666이란 숫자가 신체 어딘가에 새겨져 있으면 악마의 자식이란 얘기였다.
아이들은 누가 악마인지 찾는다며 서로 여기저기 뒤지고 놀리며 북새통을 떨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666 괴담의 근원이 바로 리처드 도너(Richard Donner) 감독의 '오멘'(The Omen, 1976년)이었다.
오멘은 그만큼 '엑소시스트'와 더불어 오컬트 영화의 상징 같은 작품이다.
정작 제작진들은 공포물로 꼽히는 것을 싫어했지만, 누가 뭐래도 오멘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공포물이다.
오멘이 특이한 것은 귀신이나 괴물 등 상상 속 존재가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분위기로 공포심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내용은 요즘 시각에서 보면 특별할 게 없다.
악마의 자식이 아무도 모르게 미국 정치가의 집 안에서 자라면서 각종 사건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얼핏 보면 이보다 앞서 개봉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와도 닮았다.
문제는 악마의 자식이라고 특별하게 생기지 않고 보통 아이들과 똑같다는 점이다.
악마의 자식뿐 아니라 악마를 보호하는 존재들 모두 우리 일상 속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와 아줌마, 아저씨들이었다.
그 점이 머리를 쭈뼛서게 만들었다.
즉, 흔한 존재가 공포의 존재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일으켜 공포심을 유발한 것이다.
이를 위해 대본을 쓴 데이비드 셀처는 성경의 요한 묵시록을 인용해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만들었다.
리처드 도너 감독 또한 괴물이나 귀신의 존재를 일체 배제해 현실적인 상황 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며 실제로 있을 법하다는 사실감을 부여했다.
여기에 중후한 카리스마를 지닌 그레고리 펙(Gregory Peck)의 진지한 연기 또한 작품의 무게를 더했다.
더불어 악마의 주문을 외우는 듯한 소리가 묵직하게 깔리는 제리 골드스미스의 음악도 분위기를 살렸다.
이 작품은 이후 등장하는 많은 공포물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현실적인 공간과 배경, 성경을 인용해 사실감을 부여한 점, 각종 비의적 상징의 활용 등은 이후 등장하는 공포물에서 계속 되풀이됐다.
그만큼 오멘을 보지 못하고 이후 작품들만 본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오멘이 식상하고 별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오멘이 엑소시스트와 더불어 시발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작품의 의미가 남다르게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대중적인 오락 영화에서 갖는 이 작품의 위치가 남다른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는 오멘의 완결판 같은 반가운 타이틀이다.
무엇보다 풍성한 부록들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어서 오멘 3부작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훌륭하게 구성됐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은 편은 아니다.
입자가 거칠어 지글거림이 보이고, 필름 열화 탓에 윤곽선도 명료하지 못하며 색도 바랜 것처럼 보인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또한 서라운드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부록으로 리처드 도너 감독의 해설, 삭제 장면, 각본가 노트, 오멘의 징조들, 웨스 크레이븐이 본 오멘, 오멘의 유산, 오멘의 음악, 촬영장의 기이한 일 등 풍성한 내용이 한글 자막과 함께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