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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오멘 (블루레이)

울프팩 2014. 6. 12. 22:16

학창 시절 떠돌던 흉흉한 괴담 중에 '666' 괴담이 있었다.

악마를 상징하는 666이란 숫자가 신체 어딘가에 새겨져 있으면 악마의 자식이란 얘기였다.

 

아이들은 누가 악마인지 찾는다며 서로 여기저기 뒤지고 놀리며 북새통을 떨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666 괴담의 근원이 바로 리처드 도너(Richard Donner) 감독의 '오멘'(The Omen, 1976년)이었다.

 

오멘은 그만큼 '엑소시스트'와 더불어 오컬트 영화의 상징 같은 작품이다.

정작 제작진들은 공포물로 꼽히는 것을 싫어했지만, 누가 뭐래도 오멘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공포물이다.

 

오멘이 특이한 것은 귀신이나 괴물 등 상상 속 존재가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분위기로 공포심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내용은 요즘 시각에서 보면 특별할 게 없다.

 

악마의 자식이 아무도 모르게 미국 정치가의 집 안에서 자라면서 각종 사건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얼핏 보면 이보다 앞서 개봉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와도 닮았다.

 

문제는 악마의 자식이라고 특별하게 생기지 않고 보통 아이들과 똑같다는 점이다.

악마의 자식뿐 아니라 악마를 보호하는 존재들 모두 우리 일상 속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와 아줌마, 아저씨들이었다.

 

그 점이 머리를 쭈뼛서게 만들었다.

즉, 흔한 존재가 공포의 존재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일으켜 공포심을 유발한 것이다.

 

이를 위해 대본을 쓴 데이비드 셀처는 성경의 요한 묵시록을 인용해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만들었다.

리처드 도너 감독 또한 괴물이나 귀신의 존재를 일체 배제해 현실적인 상황 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며 실제로 있을 법하다는 사실감을 부여했다.

 

여기에 중후한 카리스마를 지닌 그레고리 펙(Gregory Peck)의 진지한 연기 또한 작품의 무게를 더했다.

더불어 악마의 주문을 외우는 듯한 소리가 묵직하게 깔리는 제리 골드스미스의 음악도 분위기를 살렸다.

 

이 작품은 이후 등장하는 많은 공포물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현실적인 공간과 배경, 성경을 인용해 사실감을 부여한 점, 각종 비의적 상징의 활용 등은 이후 등장하는 공포물에서 계속 되풀이됐다.

 

그만큼 오멘을 보지 못하고 이후 작품들만 본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오멘이 식상하고 별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오멘이 엑소시스트와 더불어 시발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작품의 의미가 남다르게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대중적인 오락 영화에서 갖는 이 작품의 위치가 남다른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는 오멘의 완결판 같은 반가운 타이틀이다.

무엇보다 풍성한 부록들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어서 오멘 3부작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훌륭하게 구성됐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은 편은 아니다.

입자가 거칠어 지글거림이 보이고, 필름 열화 탓에 윤곽선도 명료하지 못하며 색도 바랜 것처럼 보인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또한 서라운드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부록으로 리처드 도너 감독의 해설, 삭제 장면, 각본가 노트, 오멘의 징조들, 웨스 크레이븐이 본 오멘, 오멘의 유산, 오멘의 음악, 촬영장의 기이한 일 등 풍성한 내용이 한글 자막과 함께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화는 런던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에서 찍었다. 로마 촬영 당시 마피아들 때문에 곤란을 겪었는데 촬영 지역을 관리하는 지역 보스의 아들을 택시운전사로 출연시켜 문제를 피했다. 영화 중 손가락에 붕대 감은 택시운전사가 나오는데 마피아 보스의 아들이다. 그레고리 팩이 택시 문을 닫을 때 손가락이 끼어 다쳤다. 그 바람에 마피아 가족들이 난리가 났다고 한다.
주인공으로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등이 거론됐고 찰튼 헤스톤, 윌리엄 홀든, 로이 슈나이더 등도 제의를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 당시 그레고리 펙은 아들이 자살하는 비극을 겪어 출연이 쉽지 않았으나 출연을 승낙해 영화의 격이 달라졌다.
죽은 유모 역할은 유명한 배우 잭 팔란스의 딸 홀리 팔란스가 맡았다. 주인공의 집은 런던 근교에 있는 기네스 저택이다. 모든 영화사들이 제작을 거절한 대본은 워너브라더스에 넘어갔으나 당시 워너는 '엑소시스트' 속편 제작에 정신이 팔려 이 작품을 등한시했고, 리처드 도너 감독이 친구인 20세기 폭스사의 알란 래드 사장을 설득해 제작했다.
악마의 감시견으로 독일산 셰퍼드를 쓰려고 했으나 영국에 들여오기 위한 검역에 6개월이 걸려 영국산 로트와일러를 이용했다. 이 작품이 성공해 20세기 폭스는 '스타워즈' 제작비를 마련했다.
런던의 미 대사관을 빌려 촬영. 주영 미국대사로 나온 그레고리 펙의 집무실도 실제 미국대사 집무실이다. 조지 루카스 감독은 도너 감독에게 부탁해 이 작품을 찍은 길버트 테일러 촬영감독을 '스타워즈' 촬영감독으로 기용했다. 
도너 감독은 원래 TV 시리즈를 주로 찍었다. 너무 유명한  '600만 불의 사나이' '형사 코작' 등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의 성공으로 영화 연출을 맡게 됐으며 '슈퍼맨'도 감독했다.
윈저 사파리파크의 비비 우리에서 찍은 비비 공격 장면은 비비를 화나게 하기 위해 상처를 입고 치료 중인 대장 비비를 차에 태우고 찍었다. 대장이 차에 갇힌 것을 알게 된 비비들이 무섭게 공격해 제작진은 실제로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 
럭비 장면은 윈저 성 운동장인 윈저 매치에서 촬영. 뒤에 보이는 건물이 화재가 나기 전 윈저성이다. 영화 완성 후  20세기 폭스사 홍보팀은 이 작품을 공포물로 홍보하려 했으나 공포물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 감독과 제작자는 이에 흥분해 홍보팀 직원과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결국 감독은 외부 홍보대행사에 작품 홍보를 맡겼고 거기서 666 도안을 이용한 유명 포스터를 만들었다. 
각본을 쓴 데이비드 셀처는 성경의 요한계시록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상했다. 셀처는 영화 제작 중 소설을 썼고 개봉 2주 전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처음 제목은 '안티 크리스트'였고 나중에 '모반'으로 바뀌었다가 최종적으로 '오멘'이 됐다. 정작 작가는 징조라는 뜻의 오멘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피뢰침에 꿰뚫린 장면은 스위치를 누르면 창의 절반이 위로 올라가고 나머지는 아래로 내려가 마치 관통된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떨어지는 피뢰침은 와이어를 이용해 내려 보냈다. 이 장면은 각본가  데이비드 셀처가 뉴욕에 살 때 교회 꼭대기에서 떨어진 십자가에 관통돼 죽은 실제 사건을 토대로 썼다. 
난간에 매달렸던 여인이 바닥에 천천히 떨어지는 장면은 벽을 바닥처럼 꾸미고 이동 발판 위에 올라선 여배우가 벽 쪽으로 움직여 마치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깨진 어항에서 쏟아진 물은 플라스틱을 벽에 붙여 만들고, 촬영 때문에 생명이 죽는 것을 원치 않은 도너 감독은 죽은 정어리에 주황색을 칠해서 금붕어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촬영 도중 불길한 일이 많이 일어나 오멘의 저주라는 말이 돌았다. 작가 데이비드 셀처와 그레고리 펙이 탔던 비행기가 번개에 맞았고, 펙이 자주 가던 식당에 IRA가 폭탄을 던지고 기총소사를 하는 일도 발생했다. 윈저 동물원에서는 촬영 후 관리인이 사자 우리의 문을 열어놨다가 물려 죽었다. 또 펙이 타려던 비행기는 추락해 조종사가 죽었다.
치비타베키아 무덤 장면은 실내 세트에서 촬영. 스턴트맨들이 옷 속에 가죽과 금속 옷을 입고 개에 물리는 장면을 찍었다. 천주교에서는 이 영화 덕분에 성서가 대중화될 것으로 보고 상을 줬다. 
이스라엘서 촬영한 장면. 제작자는 처음에 이 영화를 7편까지 계획했으나 3편으로 줄였다. 2, 3편은 각기 다른 감독이 연출했고 3편의 주연은 뉴질랜드 출신 신인배우였던 샘 닐이었다. 이후 폭스 TV에서 TV용 영화로 '오멘 4'를 만들었고, NBC TV에서 TV 시리즈물로 오멘을 기획하고 리처드 도너에게 연출을 맡겼다. 도너 감독은 TV용 오멘 시리즈 연출을 "일생의 가장 큰 오점"이라고 할 만큼 좋지 않았다. 결국 NBC는 1회만 내보내고 시리즈를 접었다. 
유명한 목 잘리는 장면은 트럭에 설치한 투석기로 강화유리를 발사해 인형의 머리를 자르는 방법을 사용. 이를 연출한 존 리처드슨은 벨기에에서 전쟁영화 '머나먼 다리'를 찍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옆에 탔던 애인의 목이 영화처럼 잘려 사망했다. 이 또한 오멘의 저주로 알려졌다.
원래 엔딩은 대사 부부와 아이가 모두 죽는 내용이다. 그렇게 촬영했으나 내부 시사에서 20세기 폭스사 사장 알란 래드가 아이를 살리자는 제안을 해 엔딩을 재촬영했다. 
오디션으로 찾아낸 데미안 역의 하비 스티븐스는 원래 금발에 초록색 눈을 가진 소년이다. 이를 검은 머리로 염색했다. 제리 골드스미스는 위압적이고 공포감을 조장하는 음악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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