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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의 그림자

울프팩 2013. 4. 10. 07:15

"악당은 완전히 검은색이 아니고, 영웅도 완전한 흰색이 아니다. 세상은 모두 회색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이런 생각을 갖고 미스테리 스릴러 영화 '의혹의 그림자'(Shadow Of A Doubt, 1943년)를 만들었다.

실제로 영화 속 인물들은 이러한 이중성을 갖고 모호하게 처리됐다.
평화로운 작은 마을의 어느 가족에게 어느날 낯선 삼촌(조셉 코튼)이 찾아온다.

삼촌은 더 할 수 없이 친절하고 점잖은 신사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았는 지 아무도 모른다.
형사들이 삼촌의 뒤를 캐면서 여주인공 찰리(테레사 라이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빠진다.

결국 의문에 쌓인 삼촌의 정체와 마을의 이중성이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다.
마을의 이중성은 "세상이 불결한 돼지우리라는 것을 아니? 세상은 지옥이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그게 무슨 상관이야."라는 손턴 와일더가 쓴 삼촌의 대사에 잘 드러나 있다.

그만큼 영화는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과 평화로운 마을에서 일어나는 불길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의 묘미는 과연 삼촌이 범죄자인 지 아닌 지 관객이 끊임없이 의문을 갖게 만드는 데 있다.

여기에는 절묘한 캐스팅과 히치콕 특유의 기발한 구성이 한 몫 했다.
이전 작품에서 주로 선하고 점잖은 배역을 맡은 조셉 코튼을 미스테리한 인물로 설정하고, 연약해 보이는 테레사 라이트를 여주인공으로 기용해 보는 이들에게 시종일관 의혹과 불안감을 조성한다.

또 영화 속 무대인 캘리포니아 산타로사의 현장 촬영과 스튜디오 촬영을 적절히 섞어 불길한 기운을 전달하는 영상도 훌륭했다.
그래서 히치콕은 이 작품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았다.

미스테리한 구성이 뛰어난 이 작품은 찰리 삼촌이 찾아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 역시 유니버셜에서 출시한 '히치콕 콜렉션'에 포함돼 있다.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의 영상은 무난하다.
더러 계단현상과 필름의 잡티도 보이지만 흑백 영화여서 어지간한 흠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부록으로 제작과정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주연인 찰리 삼촌을 연기한 조셉 코튼. 히치콕은 원래 삼촌 역에 윌리엄 파웰을 섭외했으나, 그의 소속사인 MGM이 일정을 핑계로 출연을 거절해 데이비드 O 셀즈닉 사단에 새로 합류한 코튼을 썼다.
초반 뉴저지 마을에 누워 있는 삼촌과 산타로사 집 침대에 누워 있는 찰리의 모습을 비슷하게 연출한 것은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손턴 와일더가 헤밍웨이 단편소설 '살인자'에 대한 오마주로 생각한 아이디어다.
히치콕은 찰리 역에 여배우 조안 폰테인의 언니인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를 고려했다. 그러나 일정이 맞지 않아 무산되면서 골드윈 전속배우였던 테레사 라이트에게 돌아갔다. 라이트는 촬영 전 작가 니븐 부슈와 결혼해 신혼이었다.
원래 이 작품은 히치콕의 친구 마거릿 맥도넬의 남편인 작가 고든 맥도넬이 1938년 구상한 '찰리 삼촌' 이 토대가 됐다.
이 작품은 히치콕이 데이비드 O 셀즈닉과 1년에 2편의 영화를 만들기로 한 계약에 따라 유니버셜에서 '파괴공작원'에 이어 두 번째 만든 작품이다.
히치콕은 대부분 산타로사에서 현장 촬영을 했으나 일부 장면은 유니버셜스튜디오에서 찍었다. 도서관에서 과거 신문을 뒤져 연쇄살인 이야기를 읽고 나가는 찰리의 모습을 높은 크레인샷으로 잡은 장면도 유니버셜의 스튜디오에서 찍었다.
저녁식사 장면도 유니버셜의 22번 스튜디오에서 촬영. 아버지의 친구로 나온 흄 크로닌은 당시 30세였다. 그는 나이가 들어보이도록 머리를 희게 염색했다.
뒷모습이 보이는 찰리의 독서광 여동생 역할은 히치콕이 산타로사 길거리에서 발견한 동네 소녀 에드너 메이 워너콧을 썼다. 당시 10세였던 그는 동네 과일판매상의 딸이다.
불안하게 기운 앵글. 히치콕은 촬영을 위해 작가 와일더와 함께 산타로사 마을을 직접 탐사했다. 당시 산타로사는 인구 1만3,000명의 조용한 마을이었다.
히치콕이 찰리의 집으로 촬영한 곳은 산타로사의 맥도널드 애비뉴에 있는 마을 의사의 집. 영화 속 아버지의 직업인 은행원이 갖기에는 너무 큰 집이었으나 히치콕은 리얼리티가 중요한게 아니어서 이를 무시했다.
히치콕은 이 영화를 근본적으로 운명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라고 봤다.
고든 맥도넬이 구상한 오리지널 이야기는 가족이 소풍을 갔다가 절벽에서 삼촌이 찰리를 밀어버리는 결말이었다. 이 작품은 히치콕과 부인 알마, 대본을 쓰다가 군에 입대한 작가 손턴 와일더, 원안을 제공한 고든 맥도넬 등 6명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찰리의 어머니인 엠마는 촬영 중 신우염으로 사망한 히치콕의 모친 이름에서 따왔다. 히치콕은 이 작품에서도 카메오로 출연했다. 기차에서 카드놀이 하는 사람 가운데 뒷모습이 보이는 인물이 히치콕이다. 그는 이 작품 촬영 당시 체중이 135kg 가량 나갔다.
히치콕의 작품 세계에서 악마는 곧 평범한 이웃인 경우가 많다. 그는 "우리 집안에 악마가 살고 있을 지 모른다. 진정한 안식처는 어디에도 없다"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 곧 서스펜스 영화의 묘미라고 생각했다.
히치콕 콜렉션 블랙디지팩 (로프 나는비밀을알고있다 싸이코 의혹의 그림자 파괴공작원 이창 해리의 소동) 7Disc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히치콕
윤철희 역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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