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이창(4K 블루레이)

울프팩 2020. 11. 25. 00:00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명작 '이창'(Rear Window, 1954년)을 보면 아파트가 감옥 같다.
각각의 독립된 가구는 거대한 교소도의 감방처럼 보이며 이들을 지켜보는 제임스 스튜어트는 간수같다.

히치콕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산물인 아파트를 소재로 공포스런 밀실 스릴러를 만들었다.
실제로 아파트 주민들은 커다란 건물에 함께 살지만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아무도 모른다.

그만큼 현대인의 무관심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은 이웃집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살인을 다뤘다.
정작 옆집에서는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아무도 모르다가, 개가 죽어 비명을 지른 여인 때문에 모든 사람이 뛰쳐나와 관심을 기울이는 장면으로 히치콕은 현대인의 무관심을 꼬집었다.

"이러고도 이웃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여인의 외침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이처럼 공동체 속에서 이뤄지는 소외와 무관심, 그리고 이웃이 무서운 살인범일 수 있다는 익명의 공포를 치밀한 연출과 긴장감있는 영상으로 잘 표현했다.

훗날 '이웃사람' 등 익명의 공포를 다룬 숱한 영화들은 모두 이 작품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시종일관 무겁고 긴장된 분위기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스튜어트가 쌍안경과 망원렌즈 달린 카메라로 이웃을 관찰하는 관음증을 연상케 하는 장면을 통해 다양한 이웃들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히치콕은 이처럼 적절한 유머코드를 통해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관객의 집중력을 높였다.

더불어 언제나 안정된 연기를 선보이는 스튜어트와 히치콕이 그토록 좋아한 금발 미녀의 전형을 보여준 그레이스 켈리의 빛나는 매력도 눈여겨 볼 만 하다.
이 작품을 보면 모나코 왕이 그레이스 켈리를 왕비로 삼은 까닭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실제로 31채의 아파트 세트를 만든 놀라운 구성과 뛰어난 히치콕의 연출력, 훌륭한 촬영,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 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수작 스릴러이다.
명불허전, 새삼 히치콕 감독이 스릴러의 전설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유니버셜에서 출시한 '히치콕 클래식 컬렉션' 4K 박스세트에 포함된 이 작품은 4K와 일반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1.66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평범한 화질이다.

 

박스세트에 수록된 4K 타이틀 가운데 지글거리는 현상이 가장 심하고 디테일도 떨어진다.

일부 장면은 원경에서 윤곽선이 퍼져 보인다.

 

그만큼 장면간 화질 편차가 있다.

음향은 DTS HD MA 2.0 채널을 지원한다.

 

부록으로 제작과정과 인터뷰 등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제작진은 31채의 아파트 세트를 스튜디오에 지었다. 이 중 12채는 가구를 완전히 갖췄다. 스튜디오 천장 때문에 아파트를 올릴 수 없어 스튜디오 바닥을 뜯어 파내고 지하에 1층과 안뜰을 만들었다.
히치콕은 댄서 역할을 발레리나 출신에게 맡기되 프로처럼 보이면 안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조진 다르시가 댄서 역을 맡아 극 중 춤 동작을 만들었다.
주연을 맡은 제임스 스튜어트. 이 작품은 코넬 울리치가 1942년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으로 잡지에 쓴 단편 '살인범이 틀림없다'(It Had To Be Murder)를 토대로 했다.
우아한 자태가 빛난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
히치콕은 켈리의 납작한 가슴을 감추려고 의상 담당인 에디스 헤드에게 옷에 주름을 잡는 방법 등을 제안했다.
카메오 출연한 히치콕. 히치콕은 이 작품 촬영 때 다이어트로 체중을 154kg에서 86kg으로 줄였다.
원작자 울리치도 집필 당시 아파트에 살았는데 작품 소재를 찾으려고 둘러보다가 영감을 얻었다.
미국에도 1950년대에 효자손이 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화면.
히치콕은 울리치의 작품을 빼놓지 않고 모두 읽을 정도로 팬이다. 히치콕은 울리치 작품에 패트릭 머혼과 크리펜 박사의 살인사건 실화를 섞었다.
켈리의 매혹적인 의상과 머리 모양은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유명한 에디스 헤드의 솜씨다. 에디스 헤드는 이후 히치콕이 영화를 그만 찍을 때까지 여주인공의 의상과 머리를 담당했다
히치콕이 스튜어트를 좋아한 이유는 보통 사람의 표상같은 배우였기 때문. 히치콕은 원작에 없는 켈리와 스튜어트의 사랑이야기를 추가했다.
이 작품은 히치콕이 파라마운트에서 처음 제작한 영화로, 파라마운트의 17번 스튜디오에서 찍었다. 촬영은 4-perf 35mm 테크니컬러로 했다.
원작에선 남편이 아내 시체를 시멘트바닥에 감추지만 영화에선 아내의 목을 잘라 모자 상자에 넣고 몸뚱이는 트렁크에 보관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런 설정은 실제 영국 살인마 패트릭 머혼이 1924년 바닷가 방갈로에서 정부를 죽여 사지 절단 후 트렁크에 넣어 태우려다 잡힌 사건에서 힌트를 얻었다.
비서와 사랑에 빠져 아내를 죽인 뒤 뒷마당에 묻고 비서와 배로 도망가다 잡힌 크리펜 박사의 실화도 참고했다. 크리펜 박사는 영화처럼 아내의 반지를 비서에게 주려고 보관했다.
세트에 낮과 밤, 아침 저녁 표현할 수 있는 원격 조명을 설치했다. 그 바람에 꼭대기층은 뜨거운 조명과 가까워 배우들이 고생했다. 또 배우들은 멀리서도 누구인 지 알 수 있도록 코드화된 의상을 입었다.
켈리가 연기한 여주인공은 히치콕의 오랜 친구로, 전직 커버걸 출신의 미국에서 가장 비싼 모델인 아니타 콜비를 표본으로 삼았다. 히치콕은 원작의 흑인 일꾼을 중년 여성간호사로 바꿨다.
히치콕은 살인범 역의 레이먼드 버를 짧은 곱슬머리에 안경, 흰 버튼다운 셔츠를 입고 줄담배를 피우는 인물로 정했다. 이는 유명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을 연상케 하는 조치다.
히치콕은 이 작품에서 스튜어트를 중심으로 소리의 거리감을 표현했다. 이 작품이 개봉한 1950년대에는 원본 네거티브 필름에서 극장용 프린트를 바로 뽑았다. 프린트를 뽑을 때 원본에 래커를 바르는데, 그 바람에 원본이 심하게 훼손됐다.
이 작품도 원본에서 389벌의 프린트를 뽑으며 래커가 벗겨져 황색층의 40% 이상이 떨어져 나가 살색이 초록으로 보였다. 이를 컴퓨터로 6개월 이상 복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