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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정 (블루레이)

울프팩 2017. 7. 27. 18:55

지아장커 감독에게 현대 중국은 뜨거운 용광로였다.
그의 작품 '천주정'(天注定, 2013년)을 보면 온통 분노로 이글거린다.

 

네 편의 이야기를 묶은 옴니버스 영화인 이 작품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각자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을 다루고 있다.
유일하게 네 번째 이야기만 등장인물이 분노하지 않는데 그의 막판 선택을 보면 오히려 관객에게 서글픔과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네 편의 이야기는 모두 분노라는 한 바구니 안에 들어 있는 계란 같은 에피소드들이다.

지아장커 감독은 중국의 SNS인 웨이보에 올라온 여러 사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중국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사건들이 강성대국으로 달려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필연적 현상이라고 봤다.

즉 국가 경제와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살림은 나아지지만 구성원들은 삶이 덩달아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기계의 나사못처럼 개인이 부품화, 파편화돼가면서 빈부격차와 사회적 갈등은 늘어나고 이를 극복하기 힘든 사람들은 다양한 폭력적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시키거나 아니면 허망하게 삶을 마감한다.
이는 서구 여러 나라들이 산업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었던 진통이고, 우리도 개발경제를 주창하던 1970, 80년대에 많이 경험했던 일들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들의 종착점이 없다는 점이다.
여전히 빈부격차와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우리를 비롯해 많은 나라들이 안고 있는 문제다.

 

G2로 부상한 중국도 마찬가지.
세계의 시장이면서 동시에 공장이기도 한 중국의 딜레마는 성장한 국가 경제만큼 구성원들의 삶 또한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아장커 감독이 카메라를 들이댄 이야기들은 중국의 환부인 셈이다.
그러니 정부에 불리한 이야기들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중국 정부에서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다.

 

지아장커 감독은 아픈 이야기를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다큐멘터리처럼 직설적인 영상으로 풀어냈다.
분노의 이유도 간결 명료하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피비린내 나는 대응도 직접적이다.

 
특히 지아장커 감독은 사람의 머리에 엽총을 들이대 쏘고 칼로 상대를 난자하는 등 피투성이 장면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마치 폭력 장면들을 분노에 대한 카타르시스처럼 사용했다.
 
무엇보다 지아장커 감독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확실한 이야기와 함께 인상적인 영상으로 잘 풀어냈다.
그가 보여주는 그림들은 예전 만주 서부극처럼 쓸쓸하며 황량하다.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빛나는 도시의 밤거리조차 사연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삼키고 있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슬퍼 보인다.
이 속에서 빛나는 것은 오로지 사람들의 분노와 이를 해소하는 선 굵은 폭력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분노를 어루만져줄 적절한 공적 권력의 대응은 영화 내내 한 번도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지아장커 감독은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개인들의 분노 표출이 공적 권력의 무기력함과 무능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현대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병폐와 문제를 제대로 드러낸 수작이다.
이 땅에서도 분노 조절 장애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날로 끊이지 않는 요즘 지아장커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가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080p 풀 HD의 2.39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감독이 표현하고자 한 화려한 색감들이 제대로 표현됐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적당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부록으로 예고편만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첫 번째 에피소드는 광산을 소유한 악덕 경영주와 일부 간부들의 부도덕한 짓에 분노한 주인공이 엽총을 들고 응징하는 얘기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2001년 산시성 출신인 후원하이가 벌인 살인사건을 토대로 했다. 그는 농촌지부의 횡령을 고발했으나 오히려 공격을 당하자 14명을 쏴죽이고 사형 판결을 받았다.

제목인 천주정은 하늘이 정한 운명이란 뜻. 이 작품은 2013년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지아장커 감독은 산시대학을 다니다가 영화에 관심이 생겨 베이징 필름아카데미에서 영화 이론을 공부했다. 중국 영화 6세대인 지하전영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이 영화에서 보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강렬한 눈빛이다. 눈이 번득하는 어느 순간 세상은 뒤집힌다.

고향을 찾은 살인청부업자 얘기를 다룬 두 번째 에피소드는 저우커우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충칭 난징 등에서 강도살인을 벌인 그는 충칭에서 사살됐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살인을 벌이는 마사지숍 여종업원을 연기한 배우 자오타오는 지아장커 감독의 아내다. 이 에피소드는 덩위쟈오 사건을 모델로 했다. 후베이성 호텔에서 근무한 덩위쟈오는 성폭행을 당할 뻔한 위기에서 칼로 2명을 죽였으나 정당방위가 인정돼 처벌받지 않았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여주인공이 벌이는 행동은 지아장커 감독이 좋아하는 호금전 감독의 무협영화 '협녀'를 본땄다.

4편에는 경제자유구역 중 하나인 둥관에 대규모 성매대 업소 얘기도 나온다. 이런 점들이 중국 정부를 불편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네 번째 에피소드는 대만 폭스콘 공장의 가혹한 노동조건을 견디지 못한 직공들 자살사건을 다뤘다. 2010년 한 해에만 중국내 폭스콘 공장에서 14건의 투신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극 중 대만인의 회사 이름도 폭스콘과 비슷한 FSK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천주정
천주정 ( 1,000장 넘버링 한정판 )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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