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비를 보면 떠오르는 영화가 두 편 있는데 하나는 프랑스 영화 '빗속의 방문객'이고 하나는 바로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년)다.
안타깝게도 '빗속의 방문객'은 프랑스에서도 아직 DVD가 출시되지 않아서 다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DVD로 갖고 있기에 비가 간혹 본다.
'친구'와 관련해 두 가지 기억이 있다.
모두 사람에 대한 기억이고, 그것도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다.
한 사람은 영화를 찍은 황기석 촬영감독이고, 또 한 사람은 배우 유오성이다.
2003년 여름, 서울 강남의 오피스텔에서 황기석 촬영감독을 만났다.
당시 그가 작업실로 쓰던 오피스텔에 '친구'의 조감독이었던 안권태 감독이 와서 입봉작 '우리 형'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 황 감독은 촬영감독들이 즐겨 본다는 미국 영화잡지를 하나 내밀었다.
바지를 둘둘 말아올린채 물에 들어가 어딘가를 바라보는 노인네 사진이 표지였다.
황 감독은 빠른 말투로 사진을 가리키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아메리칸 뷰티' '내일을 향해 쏴라' '로드 투 퍼디션' 등을 찍은 콘래드 홀 촬영감독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콘래드 홀이나 황 감독이나 모두 빛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그날도 황 감독은 조명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의 얘기를 듣고 집에 와서 '친구'를 다시 보니 느낌이 확연하게 달랐다.
황 감독은 그렇게 '친구'를 다시 발견하게 만들어준 장본인이다.
유오성은 '친구' DVD와 관련이 있다.
어느날 아내가 금속 케이스로 만들어 제법 묵직한 '친구' Ultimate Editon DVD를 들고 나갔다.
책, 음반, DVD 등을 절대 빌려주지 않는 것을 잘 아는 아내가 DVD를 들고 나갔으니 궁금했다.
그날 방송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친구' DVD를 다시 건네줬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던 차에 받아서 케이스를 열어보니, 내부 케이스에 유오성 사인이 있었다.
아내가 담당한 TV 프로에 유오성이 출연하게 돼 내 얘기를 하며 사인을 부탁했단다.
남편이 '친구'를 너무 좋아해 사인을 받아가면 아주 기뻐할 거라고...
그 얘기를 들은 유오성이 좋아하며 여기저기 사인을 해주었다.
사인을 해준 유오성도 고마웠지만 아내의 정성이 더 고마웠다.
지금도 '친구' DVD 케이스를 열면 눈 앞 가득 펼쳐지는 유오성 사인 위로 아내의 고마운 마음이 보인다.
그래서 '친구'를 더 좋아하게 됐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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