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추천 DVD / 블루레이

펄프픽션(4K)

울프팩 2022. 12. 10. 15:50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영화 '펄프픽션'(Pulp Fiction, 1994년)은 처음 봤을 때 참으로 놀라운 영화였다.
여러 개의 다양한 이야기가 옴니버스처럼 한 영화 안에서 펼쳐지지만 결국 유기적으로 맞물려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마치 여러 개의 물줄기가 거대한 강에서 만나는 것처럼 어수선한 이야기들이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져 도도한 이야기의 흐름을 빚어낸다.
오랫동안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타란티노 감독의 재기가 빛나는 탁월한 수작이다.

영화는 갱단 두목 월레스(빙 라메스 Ving Rhames)와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면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네 일상이 여러 사람과 얽힌 것처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삶도 그러하다.

그래서 부하들이 잃어버린 돈가방을 찾아오는 동안 두목이 승부조작에 관여한 권투선수 버치 쿨리지(브루스 윌리스 Bruce Willis)의 에피소드가 한꺼번에 벌어진다.
단순히 이야기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다양적 성격까지 대사나 행동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살인을 하러 가는 킬러 줄스(새뮤얼 잭슨 Samuel Jackson)와 베가(존 트라볼타 John Travolta)가 마치 장 보러 가는 아낙처럼 끊임없이 수다를 늘어놓고, 총질을 하는 킬러는 성경 구절을 외우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이런 모습들은 여타 갱 영화와 달리 인물들이 스테레오 타입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개성을 갖고 반짝거리게 한다.

더불어 따로 장면을 떼어내 봐도 하나의 짧은 에피소드가 될 만큼 이야기의 완결성을 갖는 씬 들이 많다.
이 작품을 유명하게 만든 존 트라볼타와 우마 서먼(Uma Thurman)의 트위스트 춤 장면이나 변태성욕자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인물들 얘기, 우발적 살인으로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 등이 그렇다.

마치 레고 블록을 꽂아서 거대한 이야기의 성을 만든 느낌이다.
그만큼 타란티노 감독이 이 작품의 스토리 텔링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존 트라볼타의 화려한 부활도 주목할 만하다.
'그리스' '토요일 밤의 열기' 등으로 1970년대 스타가 된 존 트라볼타는 이후 이렇다 할 히트작 없이 잊혔는데, 이 작품 출연을 계기로 그는 다시 대스타로 되살아 났다.

특히 그의 제안으로 각종 춤 동작이 만들어진 우마 서먼과 트위스트 댄스 장면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아울러 타란티노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인 훌륭한 음악 선곡도 빼놓을 수 없다.

우지 오버킬의 'Girl, You'll Be a Woman Soon', 더스티 스프링필드의 'Son of a Preacher Man' 등의 삽입곡들을 들어보면 어찌나 영상에 어울리는 음악들을 잘 찾아내는지, 적재적소에 배치된 삽입곡들이 영화의 분위기를 제대로 돋운다.
덕분에 OST 또한 따로 들어볼 만하다.

관객이나 평단의 반응도 좋아서 제4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제52회 골든글로브 각본상, 제20회 LA비평가협회 작품 감독 각본 남우주연상 등을 줄줄이 받았다.
한마디로 타란티노 시대를 알린 명작으로 꼽을만한 작품이다.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블루레이 합본이 아닌 4K 디스크만 달랑 한 장 들어있어 아쉽다.
2160p U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예리한 샤프니스와 가죽 재킷의 반지르르한 윤기가 잘 살아 있고 발색도 좋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채널 분리가 잘 돼 서라운드 효과가 뚜렷하다.

음악 소리가 후방에서 명확하게 들린다.
과거 출시된 블루레이는 부록으로 제작과정에 얽힌 이야기, 삭제 장면과 비하인드씬, TV 토크쇼, 각종 인터뷰 자료 등 풍성한 내용이 한글 자막과 함께 수록됐는데, 4K 타이틀은 이중 일부만 담았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주연을 맡은 존 트라볼타는 이 영화로 재기에 성공했고, 새뮤얼 잭슨은 미 독립영화제와 제48회 영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는 식당에서 시작해 식당에서 끝난다. 서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이 제각각 펼쳐지지만 영화가 시작된 장소에서 이야기를 끝맺음하면서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인다.
새뮤얼 잭슨이 분노에 차서 성경의 에스겔서 구절을 읊으며 총탄을 퍼붓는 장면은 압권이다. 점차 고조되는 음성은 OST에서 따로 들어도 느낌이 그대로 전달된다.
트위스트 경연이 열리는 식당 장면은 원래 볼링장이었던 곳을 빌려 식당으로 꾸민 뒤 촬영.
유명한 식당 장면은 춤추는 두 사람의 전신을 잡아 역동적인 춤 동작을 잘 살렸다. 손가락으로 V자를 옆으로 그려 눈을 가로지르는 배트맨 춤, 수영춤, 손을 위에서 아래로 흔드는 히치하이커춤 등 모두 존 트라볼타의 아이디어다.
우지 오버킬의 저음으로 흘러나오는 'Girl, You'll Be a Woman Soon'에 맞춰 우마 서먼이 춤을 추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기둥을 가운데 두고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우마의 모습이 유혹적이다. 우마의 집으로 나온 곳은 할리우드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실제 주택이다.
타란티노는 원래 존 트라볼타 역에 마이클 매드슨을 염두에 두고 대본을 썼다가 바꿨다. 그의 역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도 탐을 냈다.
권투선수로 나온 브루스 윌리스.
이 영화는 순서를 뒤섞은 것으로 유명하다. 전반에 죽은 주인공이 후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시간을 뒤섞은 설정이 신선했다. 시간 순서를 뒤집어 관객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변태성욕자에게 고초를 겪는 장면은 센트로밸리 빌딩 지하에 세트를 만들어 촬영.
타란티노 감독도 깜짝 출연했다. 타란티노의 첫 직업은 포르노 가판대에 포르노 잡지를 공급하고 돈을 수거하는 일이었다. 이후 극장에서 안내원을 했고, 22세때 비디오아케이드라는 비디오 판매점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타란티노는 소설처럼 줄거리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오가는 형식의 영화를 하려고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는 브라이언 드 팔마, 하워드 혹스, 세르지오 레오네와 장 뤽 고다르,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 하워드 혹스는 "가장 위대한 스토리 텔러", 세르지오 레오네는 "감독의 꿈을 심어준" 인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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