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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전설 (블루레이)

울프팩 2014. 6. 23. 20:54

이탈리아 작가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쓴 모노드라마용 희곡 '노베첸토'는 독특한 작품이다.
1900년대 초 대서양을 오가는 여객선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한 번도 배에서 내리지 않고 평생을 산 피아니스트 노베첸토의 이야기다.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인 만큼 시종일관 피아노 연주가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
내용도 특이하지만 등장하는 배우도 단 두 명, 피아니스트와 친구인 트럼펫 연주자 맥스 뿐이다.

'시네마천국'(http://wolfpack.tistory.com/entry/시네마천국-블루레이), '말레나'(http://wolfpack.tistory.com/entry/말레나-무삭제판-블루레이) 등을 만든 이탈리아의 명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이 작품의 독특한 구성과 이야기에 끌려 영화로 옮겼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피아니스트의 전설'(The Legend Of 1900, 1998년)은 원작 연극보다 이야기가 풍성해졌다.

원작에 없는 재즈 창시자와 벌이는 피아노 배틀,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의 사랑과 배의 운명에 얽힌 내용들이 추가돼 보고 들을거리가 많아졌다.
이 작품의 묘미는 전설적인 한 남자가 그의 인생을 들려주는 피아노 연주다.

1900이라고 불리는 피아니스트는 오로지 배 위에서 보고 듣는 것들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한 번도 피아노와 작곡을 배운 적이 없지만 천재적 음악성을 타고 난 덕분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자유자재로 기가 막힌 피아노 연주와 작곡을 한다.

그는 배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사랑의 열병과 아픔도 피아노로 풀어 낸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만의 세계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

1900이 평생을 자란 배는 타이타닉 못지 않은 거대한 여객선이지만 세상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작은 배다.
그는 한정된 공간인 배, 88개의 건반으로 구성된 피아노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무한하게 열린 육지와 엄청나게 많은 건물들, 끝없이 펼쳐진 도로는 그에게 공포 그 자체다.
끝이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무한의 공포를 견디지 못하는 피아니스트는 결국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사람들의 초상이다.

정해진 공간을 벗어나기 힘든, 운명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1900 속에 녹아 있다.
곧 1900은 막연한 미래에 불안감을 느껴 회사에서 아둥바둥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수 많은 현대인들이 모습이다.

그렇기에 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최후를 함께 하려는 1900의 담담한 모습에 눈물을 흘리는 맥스의 모습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열린 세계에서 살면서도 자신만의 정해진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현대인들을 위한 만가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작품답게 영화는 특별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음악과 영상으로 풀어 냈다.
와이드 화면의 특성을 잘 살린 무도회장 장면과 피아노 연주자의 신비감을 극대화 시키는 피아노 배틀 장면이 인상적이다.

특히 파도에 심하게 흔들리는 배 위에서 피아노로 스케이트를 타듯 미끄러지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과장되긴 하지만 신비롭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담당한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엔딩 타이틀에 흐르는 서정적인 노래 'Lost Boys Calling'은 모리코네가 작곡하고 록기타리스트 에드워드 밴 헬런이 기타를 쳤으며, 위대한 아트록 뮤지션인 핑크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가 노래를 불렀다.
빼놓지 않고 들어야 할 곡이다.


이번에 국내 출시된 이 작품의 블루레이 타이틀이 반가운 것은 바로 약 170분 분량의 감독판이 수록됐기 때문이다.

기존에 국내 출시된 DVD 타이틀은 125분 분량의 인터내셔널판이어서 아쉬웠는데 그 점을 이번 블루레이 타이틀이 말끔히 해소시켰다.


1080p 풀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기존에 국내 출시된 DVD에 비하면 화질이 월등 좋아졌지만 윤곽선이 두터워 예리한 맛이 떨어진다.

DTS HD 5.1 채널의 음향은 사방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효과음이 흘러 나오는 등 서라운드 효과가 괜찮다.

리어 활용도도 높은 편

 

부록으로 감독 음성해설, 뮤직비디오가 있으나 뮤직비디오에만 한글 자막이 들어 있다.
감독 음성해설은 영어자막도 지원하지 않는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위대한 피아니스트 1900의 친구 맥스로 나온 프룻 테일러 빈스는 트럼펫을 직접 불었다. 

프룻 테일러 빈스는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악기를 배웠다. 

극 중 등장하는 여객선 버지니아호는 실제로 존재했던 배다. 1904년 건조돼 1954년 폐기된 이 배는 1912년 4월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 무선 신호를 받고 달려가 구조활동을 펼쳐 유명해졌다. 

심하게 흔들리는 배에서 너울너울 춤추듯 미끄러지는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펼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1900을 연기한 팀 로스. 그는 피아노를 전혀 칠 줄 몰라 연주 흉내만 냈다. 

1900의 연주가 얼마나 빠르고 대단한 지를 보여주기 위해 4개의 손이 연주하는 듯한 장면은 시각적 효과로 연출했다. 해당 장면은 손 모양이 달라서 두 사람이 연주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900과 연주 대결을 벌이는 재즈의 창시자로 나온 클라렌스 윌리엄스 3세도 피아노를 연주할 줄 모른다. 

1961년 영국에서 태어난 팀 로스는 어머니가 풍경화가 겸 교사, 아버지는 미국 언론인이었다. 어려서 캠버웰 예술학교에서 조소를 배우다가 그만두고 연기를 시작해 TV 배우를 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눈에 띄어 '저수지의 개들'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배의 외관은 여객선 루시타니아호와 자매선 모리타니아호의 청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큐나드라인사가 만든 루시타니아호는 제 1 차 세계대전때인 1915년 독일 잠수함 U-20의 공격을 받고 침몰해 미국인 128명이 죽으면서 미국 참전의 계기가 됐다. 

타이타닉호도 루시타니아호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배로 건조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더 빨리 항해하기 위해 속도를 높이다가 침몰했다. 공교롭게 침몰한 타이타닉과 루시타니아호는 모두 같은 사람인 해양학자 로버트 발라드에게 발견됐다. 

천장이 둥근 무도회장은 대서양을 오가던 여객선 모리타니아호의 무도회장을 닮았다. 

잘 만든 영화이긴 하지만 다소 과장이 심한 장면들이 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피아노를 연주해 현을 달군 뒤 담뱃불을 붙이는 설정은 과장이 지나쳤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16세때 무대 감독으로 데뷔해 영화를 찍었으며, 일부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1998년 이탈리아에서는 영화감독 최고의 영예인 기사 작위를 받았다. 

촬영은 '말레나'를 찍은 라조스 콜타이가 맡았다. 

여객선 버지니아호 역할을 한 배는 폴란드 단치히 조선소에서 1960년에 건조한 목재 운반선이다. 제작진은 길이 155미터, 1만6,900톤의 이 배를 러시아의 오뎃사 항에서 발견했다.

피아니스트의 전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팀 로스 출연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피아니스트의 전설 (렌티큘러 한정판)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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