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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4K)

울프팩 2021. 11. 20. 18:36

인류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미래를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년) 만큼 간결하고 명확하게 그린 영화는 없다.

그는 약 2시간 30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상영 시간 동안 인류가 어떻게 시작됐으며 우주 탐험을 향한 인류의 의지가 어떻게 귀결될지 보여줬다.

 

공상과학(SF) 소설가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와 함께 각본을 쓴 큐브릭은 약 3분간 이어지는 암전 속에 불안하게 음악만 흐르는 독특한 인트로로 영화를 시작한다.

이후 제작사 MGM의 로고가 나오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웅장하게 이어지는 유명한 우주 화면이 등장한다.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

이후 큐브릭 감독은 유인원이 등장하는 장면을 통해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무질서하고 짐승처럼 살아가던 유인원은 우주에서 떨어진 거대한 비석 같은 석판인 모놀리스 때문에 도구를 사용해 사냥하고 싸움을 벌이며 진화한다.

 

유인원에게는 외계에서 날아온 모놀리스가 곧 신이요, 지도자였다.

그런 점에서 큐브릭 감독은 인류가 신의 피조물이 아닌 과학이 발달한 외계 생명체에 의해 진화했다는 주장에 방점을 찍었다.

 

이 과정을 큐브릭 감독은 긴 설명이나 대사 없이 포효하는 유인원 무리와 짐승의 뼈를 휘두르는 유인원 우두머리 모습을 통해 강렬하면서도 함축적이며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후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음악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흐르는 가운데 펼쳐지는 우주의 모습은 너무 아름답고 황홀하다.

 

그렇게 큐브릭 감독은 클래식 선율을 사용해 우주여행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인간과 목성행 우주선에 실린 인공지능(AI) 컴퓨터 '할 9000'의 대결이라는 긴장 관계를 배치해 끊임없이 아슬아슬한 긴장을 느끼며 영화를 보게 만들었다.

 

놀라운 것은 영상으로 보여준 이런 상상들이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기 이전에 나왔다는 점이다.

지금은 우주선을 이용한 우주 탐험과 AI가 별다를 게 없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이 우주의 모습을 본 적 없는 1960년대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소재들이다.

 

특히 우주선을 타고 달에 도착한 사람들이 모놀리스를 발견하는 장면을 보면 영화 제작 이후에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뒤 인류 최초로 TV에 중계된 달 표면과 별로 다르지 않다.

또 우주 정거장을 거쳐 목성까지 날아가는 설정과 휴대폰도 없던 시절에 우주선과 지구 사이에 화상전화를 하는 모습 등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SF컬트의 신기원

더불어 이런 상상들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영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큐브릭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도 없던 시절에 더글러스 트럼불과 함께 기초적인 시각효과와 영상 기법만으로 환상적인 우주 등 놀라운 영상들을 창조했다.

 

우주선 안에서 볼펜이 둥둥 떠다니는 장면과 도넛처럼 생긴 우주선 내부의 트랙을 곡예하듯 사람이 걷는 장면은 은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이처럼 큐브릭 감독은 황당한 괴물이 판치던 1950, 60년대 SF 영화들과 달리 지적 탐험을 몽환적 영상과 음악으로 풀며 SF라는 장르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

 

여기에 무정형의 프랙털 디자인이 다채로운 색으로 변하며 우주 공간에 펼쳐지는 신비한 스타게이트 장면은 SF 컬트의 신기원을 열었다.

영화가 개봉한 1960년대 당시 히피 문화에 물든 젊은이들은 대마초나 환각제에 취한 채 이 영화를 몇 번씩 보며 사이키델릭한 스타게이트 장면에 빠져 들었다.

 

마치 1970년대 젊은이들이 컬트의 기원이 된 영화 '록키 호러 픽쳐쇼'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열광했던 것처럼 1960년대 히피들에게 이 영화는 또 다른 관점에서 바이블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주제와 논쟁을 불러일으킬만한 메시지를 간결하면서도 충격적이고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으로 풀어내고, 2시간 30분이 길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매혹적 구성으로 이야기를 엮어낸 큐브릭 감독의 재능에 새삼 찬탄하게 만드는 걸작이다.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부록 등 3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2.20 대 1 화면비의 4K 타이틀은 화질이 발군이다.

 

디테일이 뛰어나고 색감이 선명하다.

캄캄한 우주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단색일 것 같지만 의외로 휘황찬란하고 다채로운 색을 잘 살렸다.

 

음향은 개봉 당시 극장용 오디오와 DTS HD MA 5.1 채널로 다시 녹음한 버전 등 2가지로 수록됐다.

리믹스 오디오는 전후좌우 각 채널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서라운드 효과가 좋다.

 

부록으로 배우들이 참여한 음성해설과 제작과정, 특수효과, 감독과 아서 클라크 인터뷰, 우주 개발 설명, 1966년 큐브릭 단독 인터뷰 등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음성해설과 1966년 큐브릭 인터뷰를 제외하고 한글 자막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큐브릭 감독의 영화들은 논쟁적이면서 독특하다. 이 작품 역시 초반 3분 동안 암흑 상태에서 음악이 흐르고 마치 인류의 여명기를 보여주듯 지구 뒤로 태양이 나타난다.
큐브릭 감독은 1964년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성공 이후 SF 대작을 만들 생각을 했다. 이 영화는 8개월 만에 촬영이 끝났으나 후반 작업에 2년 걸렸다.
우주에서 떨어진 거대한 돌판이 인류로 발전하게 되는 유인원들에게는 곧 신이었다. 돌판을 통해 유인원들은 뇌파에 영향을 받아 도구를 사용하게 되고 사냥을 하며 전쟁을 벌인다. 이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은 헝가리의 전위음악가 죄르지 리게티 작품이다.
유인원이 포효하며 곤봉처럼 뼈를 휘둘러 무기로 사용하는 장면이 강렬하다. 유인원은 판토마임 배우 댄 리히터가 연기했다. 큐브릭 감독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믿은 루소의 철학게 강하게 반대했다.
큐브릭 감독은 친구 아티 쇼가 권한 아서 C 클라크의 소설 '유년기의 끝'을 읽고 클라크를 만나 이 영화의 대본을 함께 썼다.
제작진은 아폴로11호가 달 착륙 전에 이 영화를 만들어 우주에서 본 지구의 모습을 상상해서 구현했는데, 나중에 아폴로11호가 전송한 영송과 비교해 보니 실제와 다르지 않았다.
무중력 상태인 우주선 안에 펜이 둥둥 떠있는 장면은 커다란 유리판에 양면 테이프로 펜을 붙인 뒤 회전시키며 촬영했다.
큐브릭 감독은 아서 클라크의 단편 중 달에서 문명의 이기를 발견하는 단편 '센티넬'을 참고했다.
우주정거장에서 지구와 화상전화 하는 모습. 미국 벨연구소는 1940년대부터 화상전화를 연구했고 1964년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이를 시연했다.
아서 클라크는 미 우주항공국(NASA)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달 착륙선 등 실제와 비슷한 기기를 묘사했다.
달에 착륙한 사람들이 모놀리스 주변에서 흔들리며 사진 찍는 장면은 큐브릭 감독이 직접 핸드헬드로 촬영했다.
각종 플라스틱 조각을 붙여서 만든 우주선은 훗날 '스타워즈' '스타트랙' 등 SF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큐브릭은 목성을 향하는 우주선 디스커버리호의 관제실을 실제 크기의 세트로 만들어 360도 회전시키며 촬영했다. 영국 항공기 제조업체 비커스 암스트롱이 38톤의 이 세트를 만들었다.
AI 컴퓨터 이름인 할(HAL)은 돕도록 프로그램된 알고리즘(Heuristically programmed Algorithmic)의 축약어다. 할은 컴퓨터인데도 생존 본능을 갖고 있어 인간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할의 목소리는 캐나다 배우 더글러스 레인이 맡았다.
할은 자신의 오작동을 의심하는 우주선 대원들이 멀리 떨어져 대화를 나누는 입술 모양을 훔쳐보고 내용을 알아낸다. 소름끼치는 이 장면은 큐브릭 감독의 아이디어다.
제작진은 원래 할을 움직이는 로봇으로 구상했으나 너무 구식이라는 생각이 들어 변경했다. MGM 경영진은 이 영화가 몹시 지루하다고 느껴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MGM 최고 흥행작 5편 가운데 하나가 됐다.
아서 클라크와 친분있던 폰 브라운 박사 등 나사 과학자들이 영화의 기술 자문을 했다. 큐브릭은 파나비전이 개발한 70밀리 슈퍼 파나비전을 이용해 2.21 대 1 화면비로 촬영했다. 나중에 70밀리와 35밀리용 프린트로도 제작됐다.
에어로크 장면도 커다란 세트를 만든 뒤 배우들이 피아노 줄에 매달려 연기했다.
큐브릭 감독과 아서 클라크는 생명체가 있는 곳이 지구 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영화로 전달하고 싶었다. 우주 헬멧은 나사에서 일한 독일 과학자 해리 랭이 만들었다.
제작진은 기묘한 도형과 빛이 퍼져나가는 스타게이트 장면을 위해 좁고 기다란 구멍으로 카메라가 스크린에 투영된 영상을 장시간 노출로 촬영해 왜곡된 이미지를 얻는 슬릿 스캔 촬영기법을 사용했다. 이 기법은 더글러스 트럼불이 고안했다. 이 기법은 '스타트랙'에도 쓰였다.
목성에 이른 사람들이 발견하는 기묘한 방은 외계인의 존재를 상징한다. 큐브릭 감독의 아내가 외계인을 그렸다.
큐브릭 감독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신'을 보여주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미지의 존재, 즉 외계인이 갖고 있는 앞선 과학과 기술이 그보다 미개한 존재들에게는 신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봤다. 이런 생각은 콘솔게임 '어쌔신 크리드'에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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