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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 2011

울프팩 2011. 2. 15. 07:43

바르셀로나를 찾았다.
이번이 세 번째다.

2월14~17일 열리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취재 때문이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 두 번째 큰 도시로, 바다를 끼고 있어 우리네 부산 같은 곳이다.

인구는 근교까지 합쳐 400만 정도 헤아린단다.
주된 수입원은 관광이며, 최근 MWC 등 대형 전시회나 박람회 유치에 적극적이다.

우리에게는 프로축구팀 FC바르셀로나로 유명하지만, 이곳은 그보다 더 유명한 세계적인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도시다.
1852년에 가난한 주물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가우디는 17세부터 바르셀로나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워낙 독특한 영감이 번뜩였기에, 천재 또는 미치광이라는 칭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바르셀로나 대학을 나와 바르셀로나 시립건축전문학교를 마친 그의 천재적 영감은 바르셀로나 곳곳에 위대한 건축물로 남아 있다.

그의 작품이 위대한 것은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한낱 건물이 무슨 감동을 줄까 싶지만 그가 남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구엘 공원, 카사밀라 등 건축물을 보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가슴 밑바닦부터 끓어 오른다.

한마디로 건물이 약동하듯 살아 숨쉰다.
때로는 고통으로, 때로는 환희로 마치 꿈틀대는 듯한 건물을 보노라면 위대한 거장의 손길에 숨이 막힌다.

그런 영감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고 타고날 수 밖에 없다.
고딕 양식에 영향을 받고 말년에 독실한 신앙으로 건축에 숭고하게 매진했지만 가구, 조각, 액세서리 등도 디자인 할 만큼 영감이 넘쳤던 인물이다.

평생을 건축에 몰두하느라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건축에만 매달렸다.
1926년에 죽을 때에도 그는 자신의 역작인 성당 앞에서 전차에 치어 죽었다. 향년 74세.

그토록 아름다운 작품을 남겼지만 자신은 꾸미지를 않아 너무도 초라한 행색 탓에 길에 쓰러진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 병원으로 늦게 이송됐다.
그는 교황청의 배려로 성인들만 안치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지하에 묻혔다.

바르셀로나를 처음 방문했을 때 가우디의 작품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그 충격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이 있었다.
세 번째로 방문하면서 예전에 미처 못봤던 새로운 부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그 익숙함과 반가움, 그리고 여러 번 봐도 사람을 압도하는 감동은 여전했다.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이방인의 감동은 여전했지만, 바르셀로나의 모습은 예전같지 않았다.
4년 전에 두 번째로 찾았을 때 바르셀로나의 밤거리는 활기찼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우선 오가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스페인의 경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4,500만 스페인 국민 가운데 실업자가 500만을 헤아린다.
유럽연합(EU) 12개국 중 실업률이 20%로 가장 높다.

당연히 EU내 못사는 국가 순위도 높아서 그리스, 포르투갈 다음에 스페인이다.
오죽했으면 정부에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공항 지분 49%를 민간에 팔겠다고 내놨다.

높은 실업률의 주범은 건설경기 침체다.
한때 호황을 누렸던 건설경기가 가라앉으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고 내수경기는 가라앉았다.

북아프리카와 인접한 지리적 조건 덕에 지중해 해저 수송관을 통해 알제리에서 석유를 끌어와 유럽에서 가장 쌌던 기름값이 지금은 휘발유의 경우 리터당 1,800원에 이를 정도로 뛰었다.
서울과 별 차이가 없다.

그 여파가 바르셀로나에도 미쳐 자전거가 부쩍 늘었고, 예전같은 활기가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관광객은 많이 찾는다.

특히 관광 수익률, 즉 투자대비 이익률이 세계 1위다.
정부가 이렇다 할 투자를 하지 않고도 피카소, 달리, 후안 미로 등이 남긴 문화유산만으로도 충분히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는 뜻이다
물론 거기에는 죽어서도 바르셀로나를 먹여살리는 천재 가우디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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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보면 웅장함과 기괴한 형상들이 주는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에 숨이 막힌다. 이 성당은 가우디가 설계를 하고 직접 건축감독까지 맡아 1882년부터 짓기 시작해 아직까지 짓고 있다. 공사를 느리게 해서 그런게 아니라 워낙 대작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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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성스러운 가족, 즉 예수와 성모 마리아, 그의 남편 요셉의 가족사를 주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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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기법도 독특했다. 철골, 콘크리트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석재를 레고 블럭 쌓듯 쌓아 올렸다. 그렇다면 저 높은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까. 거기에 가우디의 천재성이 있다. 중력의 법칙을 교묘하게 이용해 돌과 돌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무너지지 않도록 힘의 안배를 절묘하게 했다. 내부에 들어가면 가우디가 직접 만든 성당의 건축기법을 밝힌 축소모형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가우디 기법을 고집하지 않고 콘크리트를 사용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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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가 200년의 공사 기간을 예상하고 지은 탓에 성당의 앞뒷면이 다른 색깔이다. 가우디가 살아 생전 공사한 뒷쪽(원래는 이곳이 앞쪽이었다)은 세월의 흔적으로 돌들이 까맣게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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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는 살아 숨쉬는 자연을 성당에 그대로 재현했다. 나무 뿌리와 기둥, 줄기, 잎사귀와 열매 형상을 본 뜬 성당의 모습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숨을 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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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과 함께 가우디가 남긴 또하나의 걸작 구엘 공원. 역시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더불어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동화 속 집 같은 건물들은 관리실로 예정됐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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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직물업계 거부 구엘 백작의 의뢰를 받아 설계한 계획 마을이었다. 자연을 본딴 60채의 집과 공회당, 산책길 등으로 구성을 해 부자들에게 분양할 계획이었으나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집을 몇 채 못지은채 구엘과 가우디의 아버지, 형이 한때 살았으며 나중에 시 의회가 사들여 시민공원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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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 주변을 감싸듯 배치된 타일로 만든 벤치는 마치 물결치듯 구불구불한 형상을 하고 있다. 가운데 볼록한 부분은 인체공학 의자처럼 절묘하게 허리를 받쳐 준다. 색상과 디자인 모두 가우디의 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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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치는 듯한 기가막힌 형상의 통로. 자연을 본 딴 가우디의 번뜩이는 영감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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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별세계를 보는 듯한 공회당에서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구불구불한 천장 덕에 음이 공연장처럼 공명한다. 가우디는 건축의 색감이 형태를 보완해 준다고 여겨 이를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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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방문했을 때 누군가 사람들이 기대서 사진을 찍은 푸른 도마뱀 조각을 깨트리고 달아났다. 실업에 무대책인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단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푸른 도마뱀은 바르셀로나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번에 일부러 찾아가 보니 말끔하게 복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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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는 나무 뿌리, 열매 등 자연의 형상 뿐 아니라 자연미를 그대로 살리기를 원해 구엘 마을을 만들 때 함부로 지형을 바꾸거나 땅을 고르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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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마라톤 금메달을 딴 몬주익 언덕에서 내려다 본 항구와 지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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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차창에서 찍은 스페인 광장. 뒤로 보이는 둥근 건물은 투우경기장. 맞은 편에서 MWC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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