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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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블루레이)

울프팩 2020. 10. 17. 23:14

오래된 영화팬들은 남과 여라면 클로드 를루슈 감독이 1966년에 만든 걸작 '남과 여'(A Man And A Woman)를 우선 떠올린다.

무려 60여 년 전 작품인데 지금 다시 봐도 아름다운 영상과 아련한 음악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명작이다.

 

이윤기 감독도 를루슈 감독의 작품을 의식하고 '남과 여'(2015년)를 만들지 않았을까.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을 다룬 점은 두 작품이 비슷하지만 기본적인 설정이 다르다.

 

클로드 를루슈와 이윤기의 '남과 여'

를루슈 감독의 작품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사는 남녀이지만 홀아비와 미망인이어서 심리적 제약은 없다.

반면 이윤기 감독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지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각 유부남 유부녀여서 물리적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커다란 심리적 제약을 갖고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의 결말이 어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요인은 있다.

이를 통해 이 감독은 사랑이라는 근원적 감정이 물리적 간극을 뛰어넘으면서 심리적 간극도 뛰어넘을 수 있을지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여기에 정답은 없다.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인 기홍(공유)과 상민(전도연)처럼 사람마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책임 역시 각자의 몫이다.

 

이 점도 를루슈 감독의 작품과 다르다.

를루슈 감독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같은 지점을 바라보지만 기홍과 상민은 귀결점이 다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고 그저 선택일 뿐이다.

각자의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생을 저울질하는 무게추가 다를 뿐이다.

 

헬싱키와 탈린을 떠올리며

아슬아슬한 사랑 얘기보다 눈이 끌리는 것은 짧게 등장하는 핀란드(Finland)의 풍경이다.

설원은 컴퓨터 그래픽의 힘을 빌렸지만 흰 벌판에 끝없이 늘어선 진녹색 숲이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제대로 된 설원을 보려면 영화처럼 헬싱키(Helsinki) 주변이 아닌 북으로 올라가야 한다.

예전 핀란드에 갔을 때 오로라를 보기 위해 북극권에 위치한 이발로(Ivalo)를 간 적이 있다.

 

어찌나 눈이 많이 오던지 도심도 무릎까지 푹푹 빠지고 조금만 벗어나 산에 올라가면 키 높이로 쌓인 눈을 예사로 볼 수 있다.

그곳에서 본 오로라는 경이로웠다.

 

하지만 헬싱키에 가면 의외로 그렇게 눈이 쌓이지 않는다.

헬싱키에서는 눈뿐만 아니라 햇빛도 귀하다.

 

한겨울에 찾아가면 맑은 날에도 햇빛을 몇 시간 볼 수 없다.

그렇게 을씨년스럽던 헬싱키 풍광이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떠올랐다.

 

안타까우면서 답답한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도시다.

학교 등 일부 장면은 에스토니아(Estonia)의 탈린(Tallinn)에서 찍었다.

 

헬싱키에서 배를 타고 2시간 남짓 가면 도착하는 탈린은 고풍스러운 성이 자리잡고 있어서 헬싱키와 또다른 분위기다.

성이 있는 구도심은 풍요로운 중세 도시로 돌아간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낙후된 신도심은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게 하는 도시다.

 

그곳에서 FR 데이비드의 콘서트 포스터를 보고 반가우면서도 실소를 한 기억이 있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에 안타까운 이야기를 입혀 감흥을 배가시킨 작품이다.

 

특히 감독의 정갈한 연출과 사진 같은 풍광이 인상적이다.

반면 영화 분위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는 내내 답답하게 다가온다.

 

배역 설정이나 우울한 이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보인다.

1080p 풀 HD의 2.54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감독의 의도대로 정갈한 화면이 깔끔한 색감과 함께 잘 살아 있다.

특히 곱게 살린 조명이 은은한 영상을 만들어 낸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간헐적인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전체적으로 영화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실내악 같은 음향 효과다.

 

부록으로 감독과 배우들 음성해설, 인터뷰와 제작과정, 삭제 장면, 화보 촬영, VIP 시사회 영상 등이 들어 있다.

모두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아름다운 풍경에 스토리를 입혀 감흥을 배가시킨 영화다.
헬싱키 번화가에서 촬영한 장면.
원래 촬영하기로 한 호수는 눈이 녹아서 급히 주변에 다른 호수로 이동해 촬영한 장면.
호텔과 레스토랑 장면 등 일부는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찍었다. 구도심 성안에 이런 실내 분위기를 갖고 있는 호텔들이 있다.
공유와 전도연이 건축가와 디자이너숍 대표 역할을 연기.
흩날리는 눈은 컴퓨터 그래픽과 일부 뿌린 눈을 섞어서 사용.
여주인공의 사무실은 이태원에 있는 실제 의상실 내부를 조금 바꿔서 촬영.
이태원의 네모 갤러리에서 촬영.
KTX 내부 장면은 부산에서 기차를 세워놓고 찍었다.
이 감독은 제작사에서 기획한 내용을 시나리오를 쓰며 재구성했다.
촬영은 '신의 한수' '내 아내의 모든 것' 등을 찍은 김동영 촬영감독이 맡았다.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핀란드 배우 카티 오우티넨이 택시 운전사로 특별출연했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남과 여 (1Disc) : 블루레이
 
남과 여 (2DI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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