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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블루레이)

울프팩 2019. 11. 30. 22:21

에단과 조엘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2007년)를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섬뜩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단발머리의 무표정한 얼굴의 사내가 들고 다니는 공기탱크는 역대 최강의 무기였다.

소리도 없고 불꽃도 없으면서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문짝의 열쇠 틀이 통째로 뽑혀 날아갈 만큼 무시무시한 파워를 과시했다.
이를 사람의 머리에 대고 버튼을 누르면 순식간에 죽는 줄도 모르고 쓰러진다.

어떻게 저런 무기를 생각했을까, 절로 감탄하며 봤는데 알고 보니 거대한 소를 도살할 때 쓰는 도구를 개조한 무기였다.
살인자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의 무표정한 얼굴 또한 공포 그 자체였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에 낮게 깔리는 목소리, 여기에 우스꽝스러운 단발머리까지 보는 이를 절로 주눅 들게 만드는 확실한 캐릭터였다.
바르뎀이 연기한 킬러는 어찌 보면 현대판 터미네이터다.

목적을 위해 말없이 상대를 뒤쫓는 그는 지치지도 않고 포기할 줄도 모른다.
그리고 터미네이터처럼 여간해서 스러지지도 않는다.

뼈가 튀어나오고 다리에 총알이 박혀도 집요하게 추적한다.
더불어 돈과 마약 때문에 벌어지는 살인극은 한 편의 지옥도다.

코맥 맥카시가 쓴 원작 소설의 스토리도 뛰어나지만 이를 잊지 못할 영상으로 옮겨 놓은 코엔 형제의 솜씨도 뛰어나다.
코엔 형제는 1980년대의 살 풍경한 아마겟돈을 황량한 텍사스 위에 프레스코화처럼 펼쳐 놓았다.

그 속에는 더 이상 카우보이나 무법자 같은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 애들은 옛날과 다르다"며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에서 혀만 차다가 물러나는 초라한 노인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코엔 형제는 악당 앞에서 무기력하게 영문도 모른 채 스러져가는 노인들을 통해 더 이상 약자를 보호해 주지 못하는 미국의 적나라한 현실을 드러냈다.
그것이 화장기를 지운 여인네의 민낯 같은 미국의 속살이다.

이야기도 재미있고 영상도 뛰어난 작품이 뒤늦게 국내에 블루레이 타이틀로 출시돼 반갑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윤곽선이 깔끔하고 황량한 텍사스의 색감도 잘 살렸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부록은 DVD와 동일한 제작과정과 코엔 형제의 작업, 배우 인터뷰 등이 들어 있으며 모두 한글 자막을 지원한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촬영은 주로 미국 텍사스주의 마파에서 했다.

한 손에 공기통, 그리고 단발머리. 하비에르 바르뎀은 이 영화에서 공포 그 자체였다. 그는 이 영화로 오스카상을 받은 최초의 스페인 배우가 됐다.

수갑으로 보안관의 목을 졸라 동맥을 터뜨려 죽이는 등 영화는 초반부터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준다.

조시 브롤린이 사용하는 사냥총은 레밍턴 700으로, 군 저격수들도 사용한다.

와이드 스크린으로 잘 살린 이 영상은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의 솜씨다.

원작은 코맥 맥카시가 1980년에 쓴 소설이다. 이 작품은 제 80 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색, 남우조연상 등 4개의 상을 받았다.

포기할 줄 모르고 쫓아오는 무서운 킬러 못지않은 도망자 역할은 조시 브롤린이 연기. 도망자 역할에는 히스 레저도 거론됐으나 그가 다른 작품을 택하면서 조시 브롤린에게 돌아갔다.

제작자인 스콧 루딘이 원작 소설을 코엔 형제에게 소개했다.

바르뎀이 사용하는 소음기 달린 엽총은 제작진이 특수 제작했다.

조시 브롤린이 사용하는 엽총은 윈체스터 1897 모델로, 총신과 개머리판을 짧게 잘랐다.

제목은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에 나오는 첫 구절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에서 인용.

바르뎀이 공기통에 연결한 볼트건은 소를 잡는 도축 도구. 버튼을 당기면 바늘이 뇌를 뚫고 지나며 순식간에 죽인다.

늙고 지친 보안관을 연기한 토미 리 존스. 

토미 리 존스는 샌 안토니오의 연방판사가 살해당한 이야기를 극 중에서 하는데, 1979년에 실제 일어난 일이다. 당시 샌 안토니오의 연방판사 존 홀랜드 우드는 마약상에게 고용된 전문 킬러 찰스 해럴슨에게 살해당했다. 그 킬러는 이 작품에 나온 배우 우디 해럴슨의 아버지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Disc 아웃박스) : 블루레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Disc)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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