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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 - 'Paroles Paroles'

울프팩 2009. 4. 17. 22:20

Dalida & Alain Delon - Paroles, paroles

달리다.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그만큼 박복한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프랑스 샹송계의 최고 여가수였던 그는 사랑했던 3명의 남자가 모두 자살했고 그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93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난 달리다의 본명은 요란다 크리스티나 질리오테.
출신은 이집트인이지만 부모는 모두 이태리인이다.
아버지가 카이로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얼리니스트여서 어려서부터 음악에 눈을 떴다.

그의 인생은 21세때 미스 이집트에 뽑힌 뒤 달라졌다.
영화감독 눈에 띄어 배우로 데뷔,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그닥 성공하지 못했다.

달리다가 빛을 본 것은 프랑스로 이주한 후였다.
파리에서 음악 수업을 받은 뒤 샹젤리제의 카바레 가수로 출연하며 이름을 떨쳤다.
그때 어려서부터 좋아한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에서 데릴라를 변형시켜 '달리다'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1956년 발표한 노래 '밤비노'(bambino)는 46주간 프랑스 톱10 차트에 오르며 큰 인기를 끌어 생전에 55개의 골드레코드를 받았다.
또 다이아몬드 디스크를 받은 최초의 가수로 기록될 만큼 그의 음악 인생은 훌륭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그의 두 번째 연인이었던 이태리 칸초네가수 루이지 탱고는 66년에 산레모 가요제에 참가했다가 결선 하루 전 대회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호텔에서 권총 자살했다.
파리에서 날아온 달리다는 탱고 대신 대회에 출전해 탱고의 노래 '차오 아모레 차오'를 울면서 불러 상을 받았다.

연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달리다는 이듬해인 67년 자살 기도를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이때 두 번째 비보가 터졌다.
병원에 입원한 달리다를 위문하고 돌아간 첫 번째 남편이 자살한 것.

달리다는 겨우 아픔을 딛고 73년에 생 제르망 백작으로 알려진 리사르 상프레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 결혼은 7년 만에 깨어졌고, 세 번째 남편은 이혼 3개월 뒤 가스 자살을 했다.
이후 실의의 빠진 달리다는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결국 달리다는 87년 5월3일에 "인생은 견디기 힘들다...날 용서하라"는 짧은 유서를 남기고 약물 과다 복용으로 자살했다.
그의 나이 54세였다.
그가 묻힌 몽마르뜨 묘지에는 실물 크기의 그의 조각상이 있다.

달리다가 국내에 유명해진 것은 프랑스의 꽃미남 배우 알랑 들롱과 함께 부른 'Paroles Palores' 덕분이었다.
Paroles는 '말'(語)이라는 뜻이지만 국내에는 '달콤한 속삭임'으로 의역 소개됐다.

마치 연인의 대화를 연상케 하는 이 노래는 당시 미남의 대명사였던 알랑 들롱이 낮은 저음으로 남자의 이야기를 영화 대사처럼 읊으면 달리다가 노래로 여자의 생각을 화답하는 식이다.

원곡은 미나라는 이태리 칸초네 가수가 이태리 배우 알베르토 르포와 같이 부른 칸초네다.
그러나 원곡보다 달리다의 노래가 더 유명하다.

달리다가 잘 부르기도 했지만 알랑 들롱이라는 대스타의 유명세도 무시할 수 없다.
달리다와 들롱은 원래 잘 아는 사이로 녹음 당시에 몽마르뜨 언덕위 달리다의 집에서 함께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이 노래를 중학교때 카세트 테이프로 처음 들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들어본다.
노래보다 달리다의 삶이 더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