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두더지

울프팩 2005. 1. 17. 23:52

후루야 미노루(古谷実)의 만화 '두더지'는 우연히 발견한 걸작이다.
만화의 주인공 스미다는 중학교 3학년생.

그렇지만 중학생답지 않은 조숙함으로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그의 꿈은 단 하나, 오로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

또래 친구들처럼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지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저 험한 세상에서 한 몸 간수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주인공의 꿈이다.

그래서 그는 꿈을 묻는 친구에게 말한다.
"난 두더지처럼 숨어 살 거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삶은 더 할 수 없이 피폐하다.
어머니는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버렸고 아버지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거리의 부랑자가 됐다.

결국 중3생 스미다는 학교를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이 만화에 10여 년간 장기불황에 허덕인 일본인의 삶이 녹아있다.

일본인들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른 불황은 결국 어린 소년의 꿈마저 갉아먹었다.
그런데 만화 속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요즘 우리네 삶도 얼마나 힘든가.
IMF때보다 더 힘들다는 경기침체, 청년 실업 등은 일본의 장기 불황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얼마 전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의 아들은 초등학교 때 영국 유학을 꿈꾸다가 집안 사정으로 포기하고 이 땅에서 중학교에 진학했다.

지금은 중3인 그 아이의 꿈이 바로 '두더지' 속 주인공처럼 평범한 직장인이 되는 것이란다.
그런데 이 아이는 맹랑하게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해 지인의 가슴을 철렁 흔들었다.

이유인즉슨, 요즘처럼 먹고살기 힘들 때 혼자 벌어먹기도 힘든데 무슨 결혼이냐는 게 아이의 의견이란다.
만화 못지않은 무서운 현실이다.

그러니 '두더지'를 어찌 한낱 만화로 치부할 수 있을까.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더없이 우울하고 무거운 만화를 만든 작가가 엽기개그만화로 유명한 '이나중 탁구부'를 그렸다.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그런 점에서 '이나중 탁구부'와 '두더지'는 통한다.
삶의 지친 사람들에게 권하는 작품이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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