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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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4K)

울프팩 2022. 5. 2. 00:17

'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우연히 사게 된 성음에서 나온 노란색 카세트테이프 때문이었다.

자주 가던 단골 음반가게에 갔다가 곡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검은 옷을 입을 웬 남자가 총 같은 것을 어깨에 걸친 커버에 꽂혀 집어 든 테이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감독이 1984년에 내놓은 영화 '듄'의 OST였다.

당시 극장 개봉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나 소설의 인기와 무관하게 국내 상륙한 OST는 당대 최고의 세션맨 출신들로 구성된 록 밴드 토토(Toto), 브라이언 이노 등 기라성 같은 최고의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그런데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반은 아니었다.

그래서 영화나 소설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카세트테이프와 PC게임으로 먼저 만난 '듄'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정보를 찾아볼 방법도 없어서 원작 소설이 있는 줄도 몰랐다.

두 번째로 '듄'을 만난 것은 1990년대 초반 나온 PC용 모의전략게임이었다.

 

웨스트우드 스튜디오에서 내놓은 그 게임은 기지를 짓고 주변에 스파이스를 모아서 군대를 양성하는 내용이었는데 너무 어려워서 몇 번 해보다가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갖고 있던 OST와 게임이 연결되는 내용인 줄 몰랐다.

 

그러다가 '듄'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한참 뒤 좋아하던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 감독 덕분이었다.

영화잡지와 그의 해외 DVD 박스세트 등을 모으면서 원작 소설과 영화 작업에 얽힌 우여곡절을 알았다.

 

그때 영화화에 얽힌 심난한 이야기들과 해외 DVD에 실린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인터뷰 등을 보면서 '듄'이 굉장히 골치 아프고 난해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원체 SF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런 인상을 받으니 친해지기 힘들었다.

 

결국 손이 가지 않는 OST와 어려운 PC 게임, 좋아하는 감독이 밝힌 험난한 영화화 이야기들이 총체적으로 합쳐져 '듄'이라는 작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한 셈이다.

그렇기에 40년 전부터 듄이라는 작품을 인지하고도 멀리하게 됐다.

 

드니 빌뇌브의 영리한 전략

그 영향은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이 다시 만든 '듄'(Dune, 2021년)까지 이어졌다.

그만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이 영화를 봤는데 의외로 괜찮은 작품이었다.

 

물론 이 작품 역시 친절하지는 않다.

허버트 프랭크(Frank Herbert)의 원작 소설이 워낙 방대해 TV 연속극이 아닌 이상 영화로 친절하게 만들 방법은 없다.

 

따라서 원작 소설을 읽고 작품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 이상 제대로 따라가기 힘든 작품이다.

그런데도 괜찮다고 느낀 것은 원작 소설의 분위기를 영상으로 제대로 살렸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영화의 분위기가 어려운 원작 소설에 대한 부정적 인상마저 바꿔 놓을 정도로 근사하다.

내용을 간단하게 압축하면 먼 미래에 모래 행성(듄)으로 불리는 아라키스에서 스파이스라는 작물을 놓고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하코넨 가문이 얽혀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다.

 

향신료의 일종인 스파이스는 우주여행에도 사용되는 에너지원이며 아라키스 행성의 원주민 프레멘들은 이를 각성제처럼 먹으며 힘을 얻는다.

요즘 석유와 대마초가 섞인 듯한 자원이다.

 

그만큼 스파이스를 장악하는 쪽이 권력을 움켜쥐게 된다.

황제의 명령을 받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오랜 세월 아라키스를 지배하며 노동자들을 쥐어짜 스파이스 생산을 독점해 온 하코넨 가문을 몰아내려고 하면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다.

 

여기에 몸통 길이가 5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사막 괴물 샤이 훌루드까지 스파이스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을 위협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된다.

샤이 훌루드는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움직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는 괴물이지만 스파이스 생산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들을 약 2시간 30분의 영화만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함축적 스토리 속에 영상과 분위기로 승부를 건 빌뇌브 감독의 선택은 영리한 전략이다.

 

특히 일부 장면을 아이맥스로 촬영해 황량한 사막의 분위기를 마치 그랜드캐년처럼 장엄한 자연의 오페라로 바꿔 놓았다.

여기에 신비한 존재들이 얽히고설키며 빚어내는 이야기는 몽환적이면서 신비롭다.

 

액션 또한 많이 나오지 않지만 화려한 고대 검술을 섞어 마치 사무라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롭게 만들었다.

비록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아 답답할 수 있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후속편도 기대해 볼 만하다.

 

다만 이 작품 역시 '반지의 제왕'처럼 전편의 이야기를 모른 상태에서 후편을 독립적으로 보기 어려운 작품이라 관객들의 뇌리에서 잊혀가는 시간의 간극을 얼마나 메울지가 관건이다.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3D 블루레이 등 3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사운드 디자인 압권

2160p UHD의 2.39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최신작답게 화질이 좋다.

샤프니스가 높아 윤곽선이 예리하고 디테일이 우수하다.

 

색감 또한 생생하고 블랙의 깊이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아이맥스로 찍은 부분도 2.39 화면비로 처리해 버려 감독의 의도를 제대로 느끼기 힘든 한계가 있다.

 

영상보다 더 칭찬을 해주고 싶은 것은 음향이다.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아주 훌륭하다.

 

각 채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모래 폭풍 소리가 사방 채널을 가득 메우는 가운데 잠자리를 닮은 비행체인 오니솝터의 이동 방향을 소리 만으로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소리 이동성과 방향감이 뛰어나다.

저음 또한 묵직하게 울린다.

 

한마디로 사운드 디자인이 압권인 영화다.

부록으로 각 가문 및 종족 소개, 스파이스 설명, 액션 장면 및 배경 설명, 미술, 캐스팅, 오디오, 세트, 비행체와 모래 괴물 소개, 분장 및 의상 등에 대한 설명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대부분의 부록이 방대한 원작 소설에 대한 배경 설명에 치중돼 있다.

그만큼 본편만 봐서는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다.

 

모든 부록은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다만 부록의 한글 자막을 보면 비행체에 대한 표기가 통일되지 않아 오니솝터와 오르니토프터 두 가지를 왔다 갔다 한다.

 

자막 번역을 각기 다른 사람에게 맡겼더라고 감수를 제대로 하면 표기를 통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화를 보면서 이슬람 분위기를 많이 느꼈는데, 원작 소설가인 허버트 프랭크가 아랍의 언어와 사상들을 많이 차용했기 때문이다. 촬영은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등에서 이뤄졌다.
빌뇌브 감독은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에 대한 존경심을 영화로 보여주기 위해 원작의 많은 부분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그레그 프레이저 촬영감독은 디지털로 촬영한 영상을 스캔해 필름으로 옮겼다.
아가멤논의 후손으로 설정된 아트레이더스 가문은 80년간 아라키스 행성을 장악한 하코넨 가문의 폭정을 끝내기 위해 대립한다. 아리LF 카메라를 이용해 아이맥스로 촬영.
무술 감독 로저 유언은 펜싱과 필리핀 무술 칼리를 접목해 속도가 빠른 근접 격투를 만들었다.
'2046' '에로스' '일대종사' '와호장룡' '해피투게더' 등으로 낯익은 대만 배우 장첸이 유에 박사 역으로 등장.
프랭크 허버트는 6년간 자료를 수집해 1965~1985년까지 6부작 SF 소설 '듄'을 썼다.
티모시 샬라메가 아트레이더스 가문의 후계자이자 예언의 주인공 폴 아트레이더스를 연기.
하코넨 가문은 오랜 세월 아라키스 행성을 지배하며 원주민 프레멘을 쥐어짜 스파이스를 채굴한다.
듄을 처음 영화로 기획한 인물이 조도로프스키 감독이다. '에이리언'을 디자인한 HR 기거,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 배우 오손 웰스 등을 기용해 제작에 착수했지만 10여년간 고생만 하다가 무산됐다.
제작진은 소설에서 새처럼 비행한다고 묘사한 오니솝터를 잠자리를 닮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길이 23미터의 실물 모형을 만들어 배우들의 클로즈업 등을 촬영했다.
조도로프스키 감독 이후 리들리 스코트를 거쳐 데이비드 핀치에게 연출권이 넘어가 1984년 영화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