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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블루레이)

울프팩 2020. 10. 8. 00:26

1955년 국내 개봉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1953년)은 이탈리아(Italy)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로마(Rome)라는 놀라운 도시를 알렸다.

언감생심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는 일을 꿈도 못 꾸던 시절에 사람들은 그렇게 스크린으로 로마를 구경했다.

 

이런 사정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여권을 발급받아 해외로 갈 수 있었던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른 뒤 자신감을 얻은 전두환 정권에서 1989년 1월 1일 해외여행 자유화를 시행한 이후였다.

 

로마를 제대로 알린 첫 사랑 같은 영화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보다 먼저 만난 로마를 30년이 넘게 스크린으로만 구경했다.

이후 로마를 방문한 사람들의 여정은 대부분 비슷했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과 그레고리 펙(Gregory Peck)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 것이다.

스페인 계단에 가면 무조건 아이스크림을 사서 핥았고 외따로 떨어진 진실의 입을 굳이 방문해 뚫린 입에 손을 집어 넣었다.

 

포로 로마노에 가면 오드리 헵번이 누웠던 벤치를 찾아다니고 콜로세움을 바라보며 헵번과 펙이 베스파 스쿠터를 타고 달리던 길을 눈으로 더듬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출장 때문에 로마를 처음 찾았을 때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제일 궁금했던 것은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거닐었던 코스였다.

대충 겉핥기로 보고 지나면서 아쉬운 마음에 다시 들리면 꼭 자세히 보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여유를 갖고 다시 찾은 로마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의 여정을 따라간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워낙 볼 게 많은 도시인지라 1주일 내내 로마에만 머물렀어도 가지 못한 곳이 많았다.

 

마찬가지로 또 다음을 기약했지만 그때는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로마는 아름답고 위대한 도시다.

 

그렇기에 '로마의 휴일'을 비롯해서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리플리', 이소룡의 '맹룡과강', 론 하워드 감독의 '천사와 악마', 우디 앨런 감독의 '로마 위드 러브'까지 숱한 작품들이 사랑스러운 도시 로마에 기꺼이 헌사를 바쳤다.

심지어 로마를 배경으로 한 암살자가 누비는 콘솔 게임 '어쌔신 크리드 2'마저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라 애틋했다.

 

이처럼 스크린 속 로마 여정의 시작이 '로마의 휴일'이다.

이 작품 이전에도 로마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는 있지만 이 작품만큼 로마를 로맨틱하게 묘사해 꼭 가보고 싶게 만든 작품은 없었다.

 

윌리엄 와일러는 빠듯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로마 촬영을 고집했다.

그만큼 이 작품에서는 로마라는 장소가 이야기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와일러는 로마의 명소들을 찾아다니며 에피소드를 만들고 스토리를 불어넣었다.

덕분에 로마를 찾는 사람들은 그 어떤 관광안내책자에서도 볼 수 없는 풍성한 이야기와 추억을 각 명소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대신 와일러 감독은 로마 현지 촬영을 하는 바람에 제작비 부족으로 여주인공에 유명 스타를 기용할 수 없었다.

와일러 감독은 개의치 않았다.

 

유럽의 어느 왕국 공주에 어울리는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용모의 여배우를 오디션을 통해 참신한 신인 가운데 찾았다.

그렇게 발탁된 배우가 한 번도 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는 당시 24세의 오드리 헵번이었다.

 

오드리 헵번의 발견

네델란드 여귀족의 딸인 헵번은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무용을 배웠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나치 독일의 점령 기간 내내 혹독한 굶주림에 시달렸다.

그때 영양실조가 워낙 심각해 그의 발육에 영구적인 손상을 끼쳤다.

 

큰 키에 비해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깡마른 허리와 가는 팔다리는 영양실조의 결과였다.

그러나 헵번에게는 참혹했던 기간의 상처가 전화위복이 됐다.

 

발레리나를 하기에 너무 크다고 지적된 키와 가는 몸매는 연극무대에서 그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유럽의 연극무대에서 눈에 띈 헵번은 유명 극작가 콜레트에게 발탁돼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연극 '지지'의 여주인공을 맡게 됐다.

 

이것이 '로마의 휴일' 출연까지 이어졌다.

매니저는 헵번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와일러 감독이 '로마의 휴일' 여주인공을 찾고 있으니 꼭 오디션을 보라고 조언했다.

 

와일러 감독은 오디션에서 아름답고 기품 있는 외모의 헵번을 보고 바로 주연으로 발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한 번도 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는 헵번이 로마에서 수행원들을 따돌리고 로맨틱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공주 역할을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했다.

 

제작사인 파라마운트도 위험한 도박이라며 반대했다.

그런데 헵번은 신인답지 않은 침착하고 단아한 연기로 사람들의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 작품 출연 당시 대스타였던 그레고리 펙은 촬영을 할수록 의외로 연기를 잘하는 헵번에게 감탄했다.

극 중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신문기자를 연기한 그는 제작진에게 "영화가 개봉하면 오드리 헵번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을 테니 포스터에 내 이름하고 똑같이 상단에 크게 인쇄하라"는 당부를 할 정도였다.

 

펙의 예언은 적중했다.

헵번은 생애 처음 촬영한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렇게 어느 공주의 사랑스럽고 유쾌한 일탈을 다룬 이 영화는 로마와 오드리 헵번이라는 두 가지 위대한 재발견을 세상에 알렸다.

거기에는 두 사람의 공로가 있다.

 

윌리엄 와일러와 달톤 트롬보의 발견

하나는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린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다.

이미 로맨틱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던 그는 이 작품에서도 스크류볼 코미디에 강한 그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어느 하나 버릴 것 같은 깔끔한 편집과 구성으로 작품을 늘어지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연출했다.

각 명소를 돌며 찍은 장면들은 자칫 잘못하면 이야기가 끊어지며 튈 수 있는데 와일러 감독은 이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아무리 헵번이 사랑스럽고 로마가 아름다워도 이를 자연스럽게 부각한 와일러 감독의 연출이 없었다면 매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 다른 숨은 공로자는 전면에 나선 와일러 감독과 달리 절대 이름을 드러낼 수 없었던 위대한 진보적 극작가 달톤 트롬보(Dalton Trumbo)다.

 

달톤 트롬보는 1950년대 미국 할리우드를 휩쓴 매카시 광풍의 희생자였다.

조셉 매카시(Joseph Raymond McCarthy) 상원의원이 미국 내 공산주의자를 가려내겠다며 벌인 청문회에서 진보적 사상을 지녔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린 트롬보는 1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할리우드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됐다.

 

그 바람에 트롬보는 가명이나 차명을 이용해 숱한 영화의 대본 작업을 했다.

'로마의 휴일'도 마찬가지였다.

 

달톤 트롬보가 줄거리를 만들고 대본을 썼지만 크레디트에는 그 대신 친구인 이안 맥렐런 헌터의 이름이 올랐다.

한 술 더 떠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남성판 신데렐라 스토리인 이 작품은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그 바람에 이름을 빌려준 헌터는 할 수 없이 아카데미 시상대에 올라 자신의 이름을 새긴 오스카 트로피를 받았다.

트롬보가 이 작품에서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93년이었다.

 

매카시 광풍의 억울한 희생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그는 이 작품의 원작자로 인정받았고 1993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다시 받았다.

하지만 그때 이미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트롬보는 자신의 명예회복을 보지 못한 채 1976년 세상을 떠났다.

트롬보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은 이제 세상에 없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은 1981년, 오드리 헵번은 1993년, 배우 남궁원을 닮은 그레고리 펙은 2003년에 각각 타계했다.

이 작품을 다시 보며 사람은 갔어도 예술은 영원하다는 명구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사연과 의미를 담고 있다.

영화 본연의 이야기도 재미있고 볼거리도 많지만 여기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운 명작이다.

 

1080p 풀 HD의 1.37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흑백 영화인 이 작품은 화질이 괜찮다.

복원이 잘 돼서 잡티나 스크래치 하나 없이 말끔하다.

 

음향은 돌비 트루HD 모노를 지원한다.

부록으로 로마 소개 영상, 의상, 레너드 말틴의 설명, 오드리 헵번과 달톤 트롬보에 대한 설명 영상, 1950년대 파라마운트 영화들 소개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부록은 대부분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문제는 일부 번역이 이상하다.

 

산탄젤로를 생앤젤로 번역하는 등 어색하다.

또 '오늘은 병상에...'를 '오늘에 병상에...'로 표기하는 등 한글자막에 오자가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바티칸에서 내려다 본 성 베드로 광장. 세트 장면은 로마의 치네치타스튜디오에서 촬영.
신문기자를 연기한 그레고리 펙이 몰래 빠져나와 벤치에서 잠든 공주를 발견한 곳은 포로 로마노다.
그레고리 펙은 오랫동안 심각한 영화만 찍어서 이 작품의 배역을 몹시 원했다.
기자의 집이 있는 거리는 비아 마르구타 51구역이다. 예술가들이 주로 거주한 곳으로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도 여기 살았다.
트레비 분수 앞에서도 촬영. 의상은 유명한 에디스 헤드가 맡았다.
오드리 헵번은 글래머 위주였던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스타 이미지를 고상하고 우아한 스타일로 바꿔놓았다.
바티칸 주재 스페인 대사관이 근처에 있어서 스페인 광장으로 불리는 곳. 앞쪽 콘도티가에 명품점들이 모여 있다.
스페인광장에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만든 바르카차 분수가 있다. 컬러로 찍었으면 더 아름다웠을텐데 로마에서 촬영하느라 제작비가 부족해 흑백으로 촬영했다.
오드리 헵번을 따라 스페인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지금은 문화재 보호를 위해 계단에서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한다.
판테온 옆 노천카페에서 촬영. 사진기자로 나온 에디 알버트는 1930년대 할리우드에 진출해 '지상최대의 작전' '사랑의 유람선' '에어포트79' '터치다운' 등에 출연했다.
콜로세움 앞을 질주하는 헵번과 펙. 헵번은 1929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품위있는 영국식 영어를 구사해 다들 영국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네델란드의 귀족이었다.
영화 덕분에 유명하게 된 베스파 스쿠터. 헵번의 부친은 5세때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그 바람에 어머니 혼자 딸을 키웠다.
앞쪽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기념관이 서있다. 촬영은 1952년 6월에 했다.
산타 마리아 성당에 있는 진실의 입 '라 보카 델라 베리타'에서 손을 빼며 옷 속으로 감추는 것은 그레고리 펙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유명 코미디언 레드 스켈튼을 흉내냈다. 사전에 알리지 않아 오드리 헵번은 연기가 아닌 실제로 크게 놀랐다.
산탄젤로 앞 티베르강 바지선에서 무도회 장면을 촬영. 와일러 감독은 이 작품을 신데렐라 이야기를 뒤집은 동화로 생각했다.
파라마운트는 오드리에게 캐서린 헵번과 헷갈리니 성을 바꾸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오드리 헵번은 캐서린과 나이 차이가 나서 괜찮다며 거절했다.
뛰어난 연극배우였던 헵번은 영화로 스타가 된 뒤에도 계속 연극무대에 섰다. 국제아동보호에 앞장섰던 그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원래 이 작품은 프랭크 카프라가 감독하고 케리 그랜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남녀 주연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카프라 감독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판권을 파라마운트에 팔아 감독과 배우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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