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미로

울프팩 2004. 11. 25. 21:35

왜 대부분의 영화 속 연쇄살인범은 다중인격자일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을 하기 때문에 쉽게 설명하기 위해 성격파탄으로 몰고 가는 게 아닐까 싶다.

르네 만조르(Rene Manzor) 감독이 만든 '미로'(Dedales, 2003년)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는 프랑스 파리의 지하묘지에서 시체 27구가 발견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연쇄살인범으로 경찰에 지목된 인물은 연약하고 가냘픈 외모의 25세 여성 클로드(실비 테스튀 Sylvie Testud)다.
그는 여러 개 인격이 공존하는 다중인격장애 환자다.

그의 문제를 풀기 위해 정신분석의 브레낙(램버트 윌슨 Lambert Wilson)이 투입되며 사건은 실마리가 밝혀진다.
영화는 다중인격장애를 앓는 클로드의 범죄행각을 시간의 역순으로 접근하며 범죄 동기를 파헤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아이덴티티'(Identity)와 흡사하다.
'아이덴티티' 역시 다중인격장애를 앓는 범인 때문에 11명이 차례로 죽어가는 내용을 다룬 작품이다.

다만 이 작품은 다중인격장애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점이 스릴에 초점을 맞춘 '아이덴티티'와 다르다.
르네 만조르 감독은 클로드의 다중인격 원인을 미노타우르스 신화에서 찾고 있다.

미노타우르스는 크레타 왕자로 태어났으나 신의 저주를 받아 소의 머리를 가진 비운의 존재.
그는 디덜로스가 만든 미궁에 갇혀 제물로 바친 사람을 잡아먹고 살았다.

문제는 이토록 심오한 문제의식과 체계적 접근을 관객이 수용하기에 버겁다는 점이다.
특히 긴장감 넘치는 '아이덴티티'를 재미있게 봤다면 이 작품이 주는 무게감과 긴 호흡이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막판까지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은 궁금증이다.
수수께끼 같은 사건의 정답을 알고 싶어 하는 관객을 위해 감독은 깜짝쇼에 가까운 막판 반전을 준비해 놓았다.

그런데 막판 반전마저 '아이덴티티'를 연상하게 만드니, 후발주자로서 여러 가지를 손해 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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