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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천 DVD / 블루레이

별빛속으로

울프팩 2007. 10. 24. 07:37

황규덕 감독의 '별빛속으로'(2007년)는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배어있는 영화다.
영화를 보다보면 197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의 정서가 물씬 풍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교련복.
젖소처럼 흰색 바탕에 검은 점이 얼룩덜룩 찍힌 교련복은 정작 학창시절에 그렇게 입기 싫었는데, 지나고 나서 영화로 보니 추억으로 다가온다.

고교시절 교복자율화가 진행되면서 교복을 안입게 됐는데, 교련복은 변함없이 입었다.
지금도 수업시간에 교련을 하는 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에는 모형 총을 들고 제식훈련을 받았다.

교련 수업이 있는 날이면 가방이 미어터지게 교련복과 베레모, 각반을 싸들고 학교를 갔다.
어찌나 무겁던지, 입고가면 낳았을텐데 학교에서는 교련복을 입고 등하교를 못하게 했다.

대학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한 술 더떠서 1학년때에는 문무대라는 곳에 1주일 입소를 해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2학년때에는 1주일 동안 전방에 입소해 전방체험을 받았다.

물론 2가지 과정을 거치면 학점과 함께 군 복무시 90일 단축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군에 가서는 문무대 및 전방 입소 단축 때문에 곧잘 괴로움을 겪는다.
간혹 해당 과정을 안거친 고졸 출신 선임병이 있을 경우 복무기간 단축 혜택을 받는 후임병을 가만 놔둘리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교련은 1970, 80년대 학창 시절을 거친 사람들에게는 시련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 수영(정경호)은 1970년대 시대의 상징같은 교련복을 입고 등, 하교를 한다.
어느날 우연히 만난 여학생 삐삐(김민선)가 투신 자살한 뒤 수영은 현실인지 꿈인 지 애매모호한 일들을 겪게 된다.
삐삐를 비롯해 저 세상 사람들을 곧잘 만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죽음과 부활을 보기도 한다.

어찌보면 영화는 장자의 '호접몽' 같은 판타지를 이야기한다.
내가 꿈을 꾸며 나비를 본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지 알 수 없다는 호접몽처럼 수영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든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반지의 제왕'같은 판타지 오락물이 아니라, 철학적인 사색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영화 속 귀신은 더 이상 전설의 고향처럼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친근함을 넘어 그리움의 대상이다.

귀신보다 두려운 것은 주인공 수영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는 수영은 결국 자신의 공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타의에 의해 영혼과 정신이 부평초처럼 떠돌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아픔을 투영하고 있다.

이를 직설적인 화법이 아니라 판타지 설정을 통해 에둘러 풀다보니 이야기가 다소 모호해지면서 늘어지는 측면이 있다.
반면 환상처럼 진행되는 서정적인 이야기는 보는 사람의 정서와 생각을 대입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런 점에서 호흡빠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좋아한다면 보기 힘들겠지만, 관객과 호흡을 같이 하는 영화를 즐긴다면 반가울 수 있는 작품이다.

안타까운 점은 '철수 영희'도 그랬지만, 황 감독의 작품이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아직까지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감독의 건강한 정신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지향했다는 이 작품 또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영상은 화질이 좋지 않다.
입자가 거칠어 지글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윤곽선이 두텁다.
색감도 깨끗하지 못하며 암부 디테일도 떨어진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또한 서라운드 효과를 느낄 만한 부분이 많지 않다.

<파워DVD로 순간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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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조합이다. 김민선, 김C, 정경호가 함께 등장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한그림에 녹아나는 풍경이 곧 황규덕 감독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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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감독과 친분 때문에 또 의무출연한 정진영. 극중 그의 교수실은 실제로 3년 동안 황 감독이 교수로 일한 영화 아카데미의 교수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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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시를 유창하게 낭송하는 삐삐 소녀를 연기한 김민선. 독문학 수업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감독의 대학때 전공이 독문학이었기 때문. 그러고보니 황 감독의 모든 영화에는 교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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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련복과 더불어 시위가조차 반갑다. '흔들리지 않게'를 부르는 김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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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뿐만 아니라 80년대에도 대학에 기관원들이 곧잘 상주했다. 경찰서 정보과, 안기부(현 국정원), 군 보안대 등 심심찮게 기관원들이 상주하며 시위 주동자들을 학교에서 끌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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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C의 존재는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삐삐소녀와 더불어 주인공 수영을 비현실적인 세계로 이끄는 매개체적 존재이지만 어색하면서도 우습기도 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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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어쩌면 망각과 데자부의 연속일 지도 모른다. 주인공 수영은 자신이 본 영상 때문에 혼란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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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과 영애의 '그리워라'가 흐르는 가운데 마무리되는 영상. 어찌보면 희한한 귀신이야기인 이 작품은 시처럼 소설처럼 작위적인 대사가 생뚱맞으면서도 황 감독의 특징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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