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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새(4K 블루레이)

울프팩 2020. 10. 4. 00:00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익숙한 존재에 이만큼 강한 공포감을 불어넣은 영화도 드물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영화 '새'(The Birds, 1963년)는 어느날 느닷없이 인간을 공격하는 새떼를 다룬 이야기다.

다프네 드 모리에의 단편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원작처럼 왜 새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지 끝까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저 새들은 거대한 무리를 지어 맹목적으로 인간을 공격하고 온 도시를 뒤덮는다.
새떼가 사람을 습격해 눈을 파먹고, 나무 문을 뚫는 장면은 공포 그 자체다.

이를 위해 히치콕 감독은 다양한 기술을 동원해 공포를 시각화했다.
컴퓨터그래픽이 없던 시절, 히치콕은 순전히 아날로그 기술로 공포를 창조했다.

소듐조명을 이용한 매트프린팅 기법과 진짜 새와 가짜 새를 적절히 섞은 눈속임 등은 약 60년 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면 경이롭다.
특히 기술도 기술이지만 학교 놀이터에 한마리 두마리씩 늘어나는 까마귀떼와 학교 건물 위에 줄지어 앉은 새떼들의 이미지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심을 배가시키는 효과가 있다.

뿐만 아니라 히치콕은 신디사이저가 등장하기 훨씬 전에 트라우토니움이라는 일종의 전자악기를 사용해 이 작품에서 공포스런 효과음을 만들어 냈다.
그만큼 이 작품은 서스펜스의 대가인 히치콕의 놀라운 창작력이 집대성된 경이적인 작품이다.

더불어 히치콕은 무명이었던 티피 헤드런(Tippi Hedren)을 여주인공으로 발탁해 스타의 반열에 올려 놓으며 그레이스 켈리, 셜리 맥클레인, 베라 마일스에 이어 또다시 스타 조련사의 능력을 과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에 숨어있는 또다른 두려움이다.


남자 주인공 미치(로드 테일러 Rod Taylor)의 어머니 리디아(제시카 탠디 Jessica Tandy)는 아들의 여인들을 경계한다.

리디아는 아들이 결혼하고나면 혼자 남겨질까봐 두려워 아들에게 집착한다.


아들에 대한 강한 소유욕의 이면에는 두려움이라는 원초적 감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공포가 아들의 여인인 멜라니(티피 헤드런)에 대한 질투로 나타났던 것이다.


히치콕은 같은 현상을 '싸이코'에서도 다뤘다.

싸이코의 주인공 노먼은 죽은 어머니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데, 그의 이면에는 어머니가 다른 여인들을 질투하고 자신을 속박하려는 강한 소유욕이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이 노먼의 정신분열을 일으켰고 급기야 비극적인 행동을 유발하게 된다.

아들에 대한 강한 집착과 아들의 여인에 대한 질투, 아울러 홀로 남겨지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두 작품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 점에서 '싸이코'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이 영화는 '싸이코'와 더불어 히치콕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다.

4K 박스세트로 출시된 '히치콕 클래식 콜렉션'에 포함된 이 작품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제작연도를 감안하면 괜찮은 편이다.

샤프니스가 높지 않아 일부 장면에서 디테일이 잘 살아나지 않는 등 소프트한 화질이지만 색감이 잘 살아 있다.


과거 출시된 DVD 타이틀은 필름 손상 흔적이 그대로 보였는데 4K 타이틀은 이런 것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음향은 DTS HD MA 2.0 채널을 지원한다.


부록으로 1시간여 분량의 다큐멘터리와 삭제장면, 티피 헤드런의 스크린 테스트, 유니버셜 뉴스릴과 오리지널 엔딩 스크립트 등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히치콕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카메오 출연을 했다. 초반 애완동물 상점으로 들어가는 티피 헤드런과 스치며 나오는 인물이 히치콕 감독이다.

여주인공 멜라니를 연기한 미네소타 출신의 티피 헤드런은 11년간 뉴욕에서 모델로 일한 뒤 사양길에 접어들자 TV CF를 여러 편 찍었다. 그 중 하나를 히치콕이 보고 섭외하게 됐다.

야외 촬영 일부는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위치한 보데가베이와 보데가헤드에서 찍었다. 남자 주인공의 집은 보데가헤드의 낡은 집터에 집과 헛간을 지어서 찍었다.

히치콕은 1961년 8월 캘리포니아 카파톨라에서 수천 마리 바닷새들이 무리지어 하늘에서 내려와 대혼란을 일으켰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다프네 드 모리에의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모리에의 원작 소설은 1952년 '굿하우스키핑'에 처음 실렸다.

배를 탄 멜라니를 공격하는 갈매기는 줄에 매단 가짜 새다. 가짜 새가 머리를 공격하는 순간 옷 속에 감춘 파이프를 통해 바람을 불어 머리카락을 날리게 했다.

티피 헤드런의 본명은 나탈리 헤드런. 티피는 스웨덴어로 소녀라는 뜻이다. 티피는 출연 당시 이혼 상태였으며, 네 살 된 딸을 두고 있었다. 그 딸이 나중에 유명 배우가 된 멜라니 그리피스다. 티피가 연기한 여주인공 멜라니의 이름은 바로 딸 이름을 딴 것이다.

줄 위에 늘어선 새들은 종이와 속을 채운 인형으로 만든 가짜 새들이 대부분이며 중간 중간 진짜 새를 섞어 눈속임을 했다.

새에게 파먹힌 눈은 일종의 매트페인팅 처리를 했다. 이 장면에서 히치콕은 즐겨 쓰는 가속 편집을 했다. '여고괴담'에서 귀신이 다가서는 것처럼 편집을 튀게해 끌어 당기는 기법이다.

새들은 조련을 받았다. 그런데도 사람을 피해 다녀, 배우들은 손에 멸치나 빻은 고기를 들고 새들을 유인하는 바람에 새들에게 숱하게 쪼였다.

새떼들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은 인물과 새, 배경을 분리해 찍은 뒤 합성하는 소듐매트기법을 사용했다. 아이들은 새가 없는 빈 배경을 달린 뒤 스튜디오의 트레드밀 위에서 다시 달리며 클로즈업을 찍었다.

소듐매트란 배경에 황색 소듐 조명을 비추고, 인물에게만 백색 조명을 쏘는 기법이다. 이를 황색 조명에만 반응하는 필름과 백색조명에만 반응하는 필름 등 두 종류의 필름을 내장한 테크니컬러 카메라로 촬영하며, 카메라 내부에서 프리즘으로 각각의 조명을 분리하는 방법을 썼다.

히치콕은 소듐매트 기법을 개발해 디즈니영화에 여러 차례 적용한 어브 이웍스를 고용했다.

새들의 시각으로 내려다 본 부감샷은 불이 난 거리를 유니버셜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뒤 매트페인팅으로 뒤쪽 마을을 그려 넣었다. 배경에서 특정 피사체만 분리시키는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도려낸 갈매기를 합성했다. 부감샷은 지금의 유니버셜테마파크 자리인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고 찍었다.

시나리오 작업은 장편소설 '블랙보드정글'을 쓰고, 나중에 에드 맥베인이란 필명으로 유명한 '87분서' 시리즈 추리소설을 집필해 명성을 날린 에반 헌터가 맡았다.

히치콕은 배우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으려고 드러머를 고용해 촬영장에서 북을 치게 했다. 처음에는 작고 천천히 치다가 점점 속도와 소리를 높여 배우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굴뚝을 통해 새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장면은 거실 세트 주위에 그물을 친 뒤, 새장을 굴뚝 입구에 들이댄 채 굴뚝 밑에서 조명을 비추며 새장 문을 열어 새들이 굴뚝 아래로 들어오게 했다. 또 새들이 앉아있지 못하도록 공기 호스로 새들을 휘저었다.

2층에서 새들의 공격을 받는 장면에서 훈련받은 갈매기들이 사람을 피해 다니자, 스탭들이 갈매기를 티피에게 집어 던지는 방법으로 촬영했다. 새들이 카메라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렌즈 방향에서 공기분사기로 바람을 쐈고, 쓰러진 티피 주변에 새들이 머물도록 고무줄로 새들을 배우의 몸에 묶어 놓았다.

새들이 지붕 위에 앉은 장면은 발에 자석을 매단 새들을 무쇠 홈통에 앉혔다. 나중에 사람을 보고 날아가려던 새들은 거꾸로 홈통에 매달리는 처지가 됐다.

히치콕은 로드 테일러가 연기한 남자 주인공 역에 숀 코네리를 섭외하려 했으나, 숀이 007 촬영 때문에 너무 바빠 불발됐다.

종말론적인 이 영화의 원래 엔딩은 폐허가 된 샌프란시스코와 함께 주인공 일행의 차를 새들이 공격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히치콕은 제작비 등 여러가지 문제를 들어 엔딩을 바꿨다. 특히 히치콕은 새들의 공격 이유를 밝히면 공상과학영화처럼 보일까봐 아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 공포심을 배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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