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

울프팩 2010. 9. 26. 21:13
어려서 TV에서 본 흑백영화 '시라노'는 참으로 슬픈 영화였다.
1950년에 개봉한 이 작품은 우스꽝스럽게 코가 큰 검객 시라노가 다른 사람의 연애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이야기다.

하필 연애 편지의 대상은 시라노가 사랑하는 여인.
못난 외모 때문에 여인 앞에 나서지 못하는 시라노는 그렇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시라노의 대필 덕분에 남자는 여인과 결혼을 하고, 시라노는 끝까지 비밀을 밝히지 않는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면서 시라노와 함께 참전한 남자가 죽고 만다.

시라노도 중상을 입었지만 남자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사랑하는 옛 여인을 찾아간다.
그제사 여인은 뒤늦게 편지의 주인공이 시라노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시라노는 숨을 거두고 만다.

이 가슴 아픈 이야기가 로맨틱 코미디의 소재로 다시 태어났다.
김현석 감독의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바로 그 영화다.

대본을 쓴 감독은 처음부터 시라노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았지만 설정이 비슷하다보니 아예 시라노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가슴아픈 사랑이 아니다.

연극을 했던 사람들이 작정하고 모여 사랑에 서툰 사람들을 위해 사랑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업을 한다.
1970년대 유행했던 학창물을 보면 깡패 역할을 맡은 친구들이 여고생 앞에서 일부러 시비를 걸고 맞아주는 일과 유사한 셈이다.
이를 돈을 들여 좀 더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바꾼 것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판타지다.
연애편지를 쓰던 시절의 대필은 현실이지만, 연애조작 사업은 감독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이다.

이를 전제로 보면 억지스런 설정과 우스꽝스런 몸짓, 상황이 모두 용서가 된다.
판타지 속에서 리얼리티를 따진들 무슨 소용인가.

여기에 개그의 말장난같은 대사를 양념처럼 끼워넣어 빵빵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후자(전자의 반대)가 무슨 뜻이냐?" "쎄다는 뜻 아닐까요." "아, 셀 후, 후자."
뭐 이런 식이다.

덕분에 적당히 웃으며 유쾌하게 볼 수 있지만 시라노 같은 감동과 여운을 느끼기는 힘들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시라노를 떼어버리고 본격 코믹을 향해 매진하는게 더 나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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