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악마를 보았다

울프팩 2010. 8. 15. 23:56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참으로 불편한 영화다.
살인마에게 애인을 잃은 사내가 복수에 나섰으니 얼마나 잔혹하겠는가.

때리고 찌르는 것은 보통이고 뼈를 부수고 살을 찢어 발긴다.
그 바람에 스크린은 시종일관 사내의 증오심이 뿜어내는 핏빛 복수로 새빨갛게 물든다.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서로 악마를 본다.
죽이려 달려드는 상대에게서, 그리고 상대를 파괴하려 드는 자신의 내부에서 그들은 각자 악마를 본다.

관객은 그렇게 변해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인간 본성의 파괴라는 또다른 악마를 본다.
스크린 속에서, 스크린 밖에서 서로 악마를 보는 셈이다.

악마들의 향연은 절로 얼굴이 찌푸려질 만큼 끔찍하다.
인육을 먹고, 더러 개에게도 먹이는 장면은 재심의를 받기 위해 편집에서 걸러냈지만 정황상 추정이 가능한 장면들도 나온다.

특히 힘없는 여성들을 노린 극중 최민식의 악행은 여성 관객이라면 더더욱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주인공인 이병헌의 복수도 더욱 처절하다.

입장료를 낸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복수가 극한으로 치달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복수가 처절하고 잔혹하다고 더 통쾌한 지는 의문이다.
물론 자비심으로 무조건 용서하는 맥 없는 복수보다는 피를 뿌리는 것이 상업 영화 속성상 필요했겠지만 너무 작위적이다.

관객들이 복수에 화답하며 같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려면 극중 인물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데, 고양이가 쥐몰이하듯 잡았다 풀어주기를 반복하는 유희같은 복수는 오락꺼리는 될 수 있을 지 몰라도 현실감은 떨어진다.
상대에게 고통을 가중시키기 위해서라는 주인공의 해명조차도 가학성 이상 성격자로 보이게 만들 뿐이다.

디테일에 약한 점도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이해하기 힘든 이병헌과 최민식의 동선이다.

어떻게 처음 가는 장소를 저렇게 쉽게 찾아갈까.
낯선 사람의 주소를 외우고 다니나.

왜 저렇게 날 잡아가라는 듯 멍청하게 서 있을까.
심지어 경찰조차도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구경만 할까.

영화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영화는 재미있다.

군더더기 같은 장면이 더러 있긴 하지만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가슴 졸이며 참을 만큼 볼 만 하다.
특히 이병헌과 최민식 두 배우의 팽팽한 연기 대결이 압권이다.

이병헌의 우는 표정과, 눈에 힘을 뺀 탁한 눈빛이 오히려 더 위악적으로 보이는 최민식의 무표정한 얼굴은 그 자체만으로도 작품이다.
불편하면서도 재미있기에 견뎌야 하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의 딜레마이자 매력이다.

참고로, 이 작품보다는 원빈이 나온 '아저씨'가 더 깔끔한 재미를 선사한다.
'인셉션' '악마를 보았다' '아저씨' 세 작품 중에서 고르라면 단연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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