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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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그녀(블루레이)

울프팩 2019. 5. 21. 00:01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2001년)는 여러 사람에게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1999년 PC통신 나우누리에서 견우74라는 필명을 사용한 김호식씨가 연재한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견우라는 청년이 우연히 독특한 성향의 여대생을 만나 사랑과 이별을 겪는 이야기다.

 

원작 소설은 작가의 실화를 토대로 했지만 곽 감독이 이를 영화에 맞게 고쳤다.

우선 결말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고 중간에 시각적 재미를 줄 수 있는 여대생의 소설 이야기 등이 들어갔다.

 

어쩌면 원작 소설 그대로 만들었다면 영화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을 수 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랑에 대한 기대를 아련한 아픔과 함께 잘 버무려 이야기를 만드는데 탁월한 솜씨를 갖고 있는 곽 감독은 '비 오는 날의 수채화'에서 보여준 감수성을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발휘했다.

 

아련한 이야기 속에 CF처럼 재기발랄한 영상과 유머가 녹아들며 당시 젊은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영화의 예기치 못한 성공은 여러 사람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우선 1989년 데뷔작인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이후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던 곽 감독에게는 이 작품이 재기의 발판이 됐다.

곽 감독은 서정적 영상이 돋보인 '비 오는 날의 수채화'로 한국 멜로물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 이미연과 이경영 주연의 '가을여행'이 종잡을 수 없는 스토리로 주저앉으면서 향후 7,8년 동안 영화를 만들 기회를 갖지 못했다.

 

사실상 흘러간 감독이 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이 작품을 만들때에도 주변의 반대가 많았고 배우들조차 출연을 꺼릴 정도였다.

 

그러나 곽 감독은 이 모든 우려를 불식시키듯 적당한 유머와 서정적인 영상을 곁들인 이 작품으로 훌륭하게 재기했다.

덕분에 그는 2년 뒤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클래식'으로 아련한 멜로물만큼은 그를 따라올 감독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전지현은 당시까지 CF에서 매력적인 모습을 선보이기는 했지만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는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스타 배우의 반열에 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대박을 치고 해외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면서 전지현은 국내 뿐 아니라 아시아권, 특히 중화권에서 일약 인기 스타가 됐다.

그 바람에 그는 곽 감독과 함께 중국가서 영화를 찍는 등 꽤 인기를 끌었다.

 

그런 점에서 전지현에게 이 작품은 스타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차태현은 희비가 엇갈렸다.

 

소속사와 매니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곽 감독이 쓴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 출연을 결심한 차태현은 작품의 성공으로 이름값이 더욱 올라갔다.

그는 이 작품 출연 이전에도 드라마 등이 성공해 잘 나가는 스타였다.

 

이 작품에서는 견우라는 남자 주인공을 맡아 능청스러운 연기로 더욱 주목을 받았다.

다만 그런 연기가 거꾸로 그에게 독이 됐다.

 

이후 비슷한 역할이 계속 밀려드는 바람에 오히려 작품 선택의 폭이 좁아졌고 다른 성격의 역할을 맡아도 이 작품의 견우라는 캐릭터에 자꾸 가려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가 나중에 출연해 흥행한 '복면달호'나 '과속스캔들' 역시 견우와 비슷한 풍의 캐릭터다.

 

이처럼 세 사람의 앞날에 변화를 준 이 영화는 우리 영화사에서 당시 시대 감성을 잘 살려서 스타를 만들어 낸 흥행작으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적당한 유머와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잘 섞은 곽 감독의 각본과 연출이 빛났고 이를 제대로 살린 전지현과 차태현의 연기가 빛났다.

 

특히 차태현과 전지현의 섭외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이 작품에 등장한 여러 영상은 훗날 숱한 패러디와 광고에도 등장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개봉한 지 한참 지났지만 지금 다시 봐도 식상하지 않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1080p 풀 HD의 1.92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입자감이 두드러지고 지글거림과 플리커링, 간간히 필름 잡티와 손상 흔적이 보여서 요즘 작품들의 블루레이와 비교하면 아쉬운 화질이다.

그래도 DVD 타이틀에 비하면 화질이 월등 좋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각종 효과음이 사방 채널에서 들리는 등 서라운드 효과가 잘 구현됐다.

소리의 방향감도 잘 살아 있다.

 

부록으로 곽 감독과 차태현 음성해설, 배우와 감독 인터뷰, 제작 발표회 영상, 삭제 장면과 제작 과정, 원작자 설명과 컴퓨터 그래픽 설명 등 다양한 부록이 들어 있다.

음성 해설에 한글 자막을 수록한 점은 높이 칭찬할 만하다.

 

다만 영화 본편의 한글 자막은 옥에 티다.

원작의 PC 통신체를 살리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습니다'를 '...씀미다', '봤나'를 '반나', '됐다고 그러세요'를 '댔다구 그러세요', '불꽃놀이'를 '불꼬노리'로 적어 놓는 등 마치 한글 맞춤법을 모르는 사람이 만든 것처럼 표기가 개판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나무 주변에 잔디는 제작진이 심었다.
노인의 머리 위로 쏟아진 토사물은 죽 등을 끓여서 만든 것. 이를 곽 감독이 페트병에 담아 배우 머리에 부었다.
원작 소설은 영화 뿐 아니라 만화로도 출간됐다.
극 중 독수리 오형제로 나온 김일우는 1인 다역을 했다. 그는 위암으로 고인이 됐다.
원작자는 PC통신 연재 당시 차태현과 전지현이 영화의 주연을 맡으면 좋겠다는 메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경향신문의 영화담당이었던 배장수 기자가 원조교제하는 남자 역할로 카메오 출연. 원조 교제를 고발한 시사 프로에 나온 대사를 그대로 따서 사용.
학교 강의실 장면은 경인여전에서 촬영. 원래 소설에서는 교수가 "낙태 수술하러 가는데 네가 애 아빠라고 했어"라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낙태라는 단어를 뺐다.
놀이공원 장면은 과천 서울랜드에서 촬영.
차태현을 삽으로 후려치는 장면은 고무로 된 삽을 이용해 찍었다.
중국, 대만, 홍콩, 일본과 동남아 등에서 크게 히트한 이 영화는 한류 영화의 효시가 됐다.
일본에서는 2008년 초난강과 다나카 레나를 주연으로 기용해 드라마로 리메이크했다.
미국에서도 드림웍스에서 판권을 사서 'My Sassy Girl'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했는데 평이 좋지 않았다.
차태현은 이 영화로 청룡영화제와 황금촬영상에서 각 신인 남우상을 받았고 곽 감독은 대종상 각색상, 전지현은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견우의 학교 장면은 연세대에서 촬영.
해가 뜬 날 비가 온다거나 빗 속을 연인들이 옷을 뒤집어쓴 채 달리는 장면 등은 곽 감독의 클리세다. '비 오는 날 수채화' '가을 여행' '클래식' 등에 비슷한 장면들이 나온다.
교복을 입고 술집과 나이트를 드나들며 주민증을 꺼내 보이는 영상은 아주 유명한 장면이 됐다.
포장마차 손님 중 맨 왼쪽에 앉아있는 남자가 카메오 출연한 곽 감독.
유명한 주제가 'I Believe'는 김형석이 작곡하고 신승훈이 불렀다. 곽 감독은 처음에 김형석이 부른 노래를 듣고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신승훈이 부른다고 해서 안심했다고 한다.
곽 감독에 따르면 극 중 등장하는 타임캡슐을 만든 회사가 촬영 중 파산했다고 한다.
나무 밑에 앉아있던 노인은 미래에서 날아온 견우라는 설정. 그래서 편지를 읽은 전지현이 멀리 날아가는 UFO를 발견한다.
곽 감독은 원작 소설에서 두 사람이 결별하는 결말을 완전히 다르게 바꿔 놓았다. 잘 바꿨다는 생각이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엽기적인 그녀 (1Disc 감독판 풀슬립 1,000장 넘버링 한정판)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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