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위플래쉬(4K 블루레이)

울프팩 2021. 5. 24. 00:48

1980년대에 구입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LP 중에 버디 리치(Buddy Rich)와 진 크루파(Gene Krupa)의 'The Drum Battle'이 있다.
걸출한 두 명의 재즈 드러머가 박자를 주거니 받거니 불꽃 튀는 드럼 협연이자 경연을 벌이는 명반이다.

다미엔 차젤레(Damien Chazelle) 감독의 '위플래쉬'(Whiplash, 2014년)를 보면 버디 리치와 진 크루파의 드럼 배틀이 생각난다.
차이가 있다면 버디 리치와 진 크루파의 대결은 유머러스하며 여유가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야말로 선혈이 낭자한 전쟁터다.
내용은 무명의 드러머 앤드류(마일즈 텔러 Miles Teller)가 피나는 노력 끝에 최고의 드러머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앤드류는 많은 도전자들과 경쟁을 벌여 살아남기 위해 손바닥 살이 갈라져 터지도록 드럼을 두드린다.
스네어와 탐탐은 피 터지는 전쟁터처럼 여기저기 선혈이 얼룩져 있다.

비단 드럼뿐만이 아니다.
이 작품에는 최고의 드러머를 꿈꾸는 앤드류의 도전 못지않게 피 튀기는 복수극이 들어 있다.

드럼 연주에만 매몰되면 보이지 않을 수 있는 복수극은 앤드류와 플레처(J.K 시몬스 J.K. Simmons) 선생 간에 벌어진다.
완벽한 밴드와 연주를 위해 최고의 실력을 짜내려고 학생들을 극단까지 몰아붙이는 플레처와 그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의 시간을 보내는 앤드류는 애증의 관계다.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공연 중 형편없는 연주를 한 찰리 파커에게 조 존슨이 심벌즈를 던져 망신을 준 바람에 파커가 피 나는 연습으로 최고가 된 이야기를 하며 정상에 서기 위한 가혹한 단련을 강조한다.
하지만 앤드류는 "그래도 선은 지켜야 한다"며 인격적 모독까지 서슴지 않는 플레처에게 반발한다.

플레처는 그런 앤드류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찰리 파커는 없다"고 응수한다.
찰리 파커 이야기는 두 사람 사이에 전쟁을 일으키는 방아쇠가 된다.

가혹 행위에 대한 사고가 터지면서 위기에 몰리는 플레처는 앤드류를 무대라는 전쟁터로 불러올려 공개 무대에서 망신주기라는 치졸한 방식으로 복수를 한다.
반면 앤드류의 복수는 화끈하다.

앤드류가 무대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듯 쏘아대는 'Caravan' 연주는 이 영화의 정점이다.
속사포처럼 울리는 앤드류의 드럼 비트는 마치 심장을 산산조각 낼 것처럼 가슴에 꽂힌다.

결국 앤드류는 찰리 파커처럼 뛰어난 연주자가 돼서 플레처 앞에 나타났다.
과연 앤드류의 통쾌한 복수는 누구의 승리로 봐야 할까.

심벌즈를 던진 존스 역할을 한 플레처의 혹독한 조련 덕분인지, 파커가 되기 위한 앤드류의 절치부심이 낳은 결과인지 차젤레 감독은 판단을 관객에게 맡겼다.
이 작품에서 핵심은 두 사람이 빚는 갈등의 드라마다.

드럼 연주는 드라마를 거드는 소품일 뿐이며 어찌 보면 맥거핀이다.
이를 드럼 연주를 통해 정교하게 뽑아낸 차젤레 감독의 연출 솜씨가 참으로 놀랍다.

드라마의 극적 구성과 음악에 대한 이해 두 가지 모두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어려운 일이다.
뛰어난 드라마 구성 못지않게 긴장을 놓지 않고 집중해서 보게 만드는 힘은 놀라운 드럼 연주에 있다.

온갖 악기 소리를 뚫고 울려 퍼지는 힘찬 드럼 소리는 머리를 쪼갤 듯 파고든다.
드럼 뒤로 브라스 밴드의 풍성한 선율이 커튼처럼 너울거리지만 정작 찬연히 빛나는 것은 오로지 드럼 연주다.

새삼 드럼이라는 악기가 얼마나 풍성한 표현력을 지녔는지 보여주는 놀라운 영화다.
각본을 직접 쓴 차젤레 감독은 고교 시절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한 경험이 있다.

덕분에 영화 속 밴드 이야기와 드럼 연습 등 영화 곳곳에서 벌어지는 위대한 대결과 투쟁이 사실감 넘친다.
최고가 되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멀리 하는 등 주인공이 자신과 벌이는 끝없는 싸움부터,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밴드 멤버들을 악에 받쳐 닦달하는 선생, 그리고 결정적으로 쉽게 틈을 허락하지 않는 드럼이라는 악기와의 싸움이 시종일관 보는 이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를 결정적으로 응집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막판 카네기홀 연주 장면이다.
주인공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즈 명곡 'Caravan'을 연주하는 장면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할 만큼 집중해서 보게 만든다.

새삼 드럼이라는 악기의 위대함을 여실히 드러낸 연주다.
주연을 맡은 마일즈 텔러는 실제 드럼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배우가 됐다.

물론 록밴드의 드러머여서 재즈 스타일과 다르기는 했지만 주인공 못지않게 고된 연습을 통해 훌륭한 재즈 드러머로 거듭났다.
그가 실제로 두드린 드럼 연주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머리를 까딱거리게 된다.

아울러 지독한 선생을 연기한 JK 시몬스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지르고 의자를 집어던지는 악마적 연기 덕분에 영화의 광적인 에너지가 폭발하듯 살아났다.

활화산 같은 그의 연기를 보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탈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촬영도 훌륭했다.

눈이 미처 쫓아가지 못할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드럼 스틱과 땀방울이 뚝뚝 듣는 주인공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주면서도 정확하게 스틱이 꽂히는 자리를 짚어 주는 영상은 드럼이라는 악기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촬영이다.
그만큼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절묘한 촬영 등이 잘 결합된 영화다.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의 화질은 훌륭하다.

필름 질감보다는 디지털 소스 촬영의 느낌이 확연한 영상인데 디테일이 발군이다.
예전에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과 비교하면 콘트라스트가 더 강조됐다.

명암대비 폭이 넓어진 덕분에 블랙이 더욱 짙어졌다.
다만 디스플레이 기기에 따라 소스 기기와 HDR이 적절하게 매칭 되지 않으면 화이트 피크가 높게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 흰색이 날아갈 수 있으니 흰 부분이 유난히 튀어 보이면 디스플레이 또는 소스 기기에서 HDR 항목의 니트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또한 적절한 서라운드로 영화의 흥겨운 분위기를 잘 살렸다.

박력 있는 드럼 비트가 청취 공간을 휘감는다.
부록으로 감독의 JK 시몬스의 음성해설, 토론토 영화제 이브닝 행사에 나선 감독과 배우들 인터뷰, 유명 드러머들의 인터뷰, 삭제 장면과 예고편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감독은 재즈 드러머 이야기여서 투자받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밴드의 합주 연습 장면은 뉴욕이라는 영화 속 설정과 달리 LA의 팰리스 극장에서 촬영.
차젤레 감독은 학창 시절 재즈 합주단에서 드럼을 연주했다.
주연인 마일즈 텔러는 6세 때부터 피아노, 15세 때부터 드럼을 쳤다. 그는 3,4주 훈련을 통해 록 드럼 스타일을 재즈 스타일로 바꿨다.
주인공의 애인으로 나온 멜리사 베노이스트는 TV 시리즈 '슈퍼걸'의 주연을 맡았다.
제목인 위플래쉬는 재즈 작곡가 겸 색소폰 연주자인 행크 레비가 만든 재즈 연구족이다. 채찍질을 한다는 단어 뜻처럼 학생들을 혹독하게 가르치는 선생의 교육방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 속 합주단원들은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거나 전문 연주자들이다.
촬영은 알렉사의 HD 카메라를 이용. 촬영은 19일 만에 끝났다.
마일즈 텔러는 뉴욕대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막판 카네기홀 공연 장면은 현지 촬영이 힘들어서 LA의 오르페움 극장을 빌려서 찍었다.
차젤레 감독은 처음부터 마일즈 텔러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다고 한다. 마일즈는 극 중 주인공의 드럼 연주를 대역 없이 모두 직접 했다.
JK 시몬스는 피아노를 연주한 경력이 있다. 마일즈 텔러는 막판 듀크 엘링턴의 '카라반' 연주에서 9분 동안 이어지는 드럼 솔로를 한 번도 끊지 않고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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