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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파졸리니 감독의 '데카메론'

울프팩 2010. 6. 16. 23:16

중세 이탈리아 작가 지오반니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은 페스트를 피해 시골에 모인 남녀가 매일 밤 돌아가며 100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액자식 소설이다.
그 속에는 세속의 권력을 억누르던 종교에 대한 풍자, 권위와 도덕에 얽매여 솔직하지 못한 남녀의 성과 탐욕에 눈이 멀어 세상을 속이는 욕심많은 사람들을 비꼰 이야기가 가득하다.

2차 세계대전 후 폭풍처럼 몰아친 전후 자본주의를 네오파시즘으로 규정하고 이에 항거하는 영화를 만들었던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에게 이만큼 좋은 소재는 없다.
그가 원작에서 몇 편의 이야기를 추려 만든 '데카메론'(il Decameron, 1971년)은 소설처럼 에둘러가는 은유없이 누구나 알기 쉽게 직설적으로 재미있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이 성기 노출을 마다 않는 과감한 묘사 또한 빠지지 않는다.
이를 통해 파졸리니는 어떤 상황 아래서도 자연스럽게 발로하는 성적 본능처럼 권력에 굴하지 않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대신 웅변한다.

그런 점에서 과도한 성적 묘사는 그가 파시즘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굳게 믿었던 리얼리즘의 표상이다.
이 작품은 대부분 배우가 아닌 아마추어들을 출연시켜 리얼리즘을 확보하려 애썼다.

평생을 무산 계급인 빈민에 뿌리를 두고 권력을 조롱했던 파졸리니 감독은 결국 이 작품에서 농익은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사상 최대 문제작인 '살로'를 유작으로 남긴 채 1975년 항구 도시 오스티아에서 17세 소년의 칼에 난자당해 생을 마감한다.
당시 범인인 소년은 동성애자인 파졸리니가 그를 유혹해 죽였다고 주장했으나, 살해되기 일주일 전까지 신문을 통해 신자본주의의 폐해와 이를 둘러싼 권력층, 언론의 부패를 맹렬하게 비난했던 파졸리니의 행적을 감안할 때 정치적 타살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4 대 3 레터박스 포맷인 DVD 타이틀의 화질은 별로 좋지 않다.
영상이 지글거리고 샤프니스가 떨어질 뿐더러 위, 아래로 떨리기까지 한다.
그래도 파졸리니의 문제작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타이틀이다.

문제의 성기 노출 장면은 모두 모자이크 처리됐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을 지원하며 부록은 원작자에 대한 한글 텍스트가 전부.

<파워DVD로 순간 포착한 DVD 타이틀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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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가운데 화가로 나온 인물이 바로 위대한 천재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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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음악은 '살로'와 마찬가지로 영화음악계의 거장인 엔니오 모리코네가 맡아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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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인의 꾐에 빠져 똥통에 빠진 채 모든 것을 털리는 비운의 청년은 배우가 아닌 실제 일반인이다. 다소 배우들의 연기가 호들갑스럽고 과장돼 보이는 것은 아마추어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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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처럼 영화 중간 중간 노래를 곁들인 구성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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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노출 때문에 이 작품은 미국에서도 X등급을 받았다가 개봉한 지 20년이 지난 90년대 들어 R등급으로 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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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졸리니 감독은 "나의 진정한 우상은 리얼리티"라며 평생 작품 속 리얼리티를 추구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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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캔터베리 이야기' '아라비안 나이트'와 더불어 파졸리니 감독의 생의 3부작으로 꼽힌다. 세 작품의 공통점은 거침없는 성적 묘사를 통해 남녀의 솔직한 성, 즉 리얼리티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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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졸리니 감독은 죽기 3주전에 급진적 영화 '살로'를 완성했다. 이후 75년 11월2일 로마 근교 오스티아 해안에서 난자당한 시체로 발견됐는데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데카메론(책)
조반니 보카치오 저/장지연 역
데카메론(책)
조반니 보카치오 저/한형곤 역
명작에게 길을 묻다 : 데카메론(DVD)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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