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김뢰하 6

플란다스의 개 (블루레이)

2003년 10월, 영화 '살인의 추억' 개봉 후 DVD 작업을 한창 할 때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했다. 지금은 사라진 DVD 잡지들에 한창 타이틀 리뷰를 쓰던 때여서 궁금한 게 많았던지라, 봉 감독에게 '살인의 추억' DVD 이야기를 주로 질문했다. 봉 감독이 워낙 얘기를 잘해서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겨 대화를 나눈 뒤, 일어서기 전에 싸인을 부탁하며 '플란다스의 개'(2000년) DVD 타이틀을 내밀었다. 봉 감독이 자신의 첫 작품이라 애정이 많이 간다며 은근히 좋아하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나온 블루레이 타이틀을 보니 그때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봉 감독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본명이 매리 루이스 드라 라메인 영국의 동화작가 위다가 쓴 동화 '플란다스의 개'와 아무 상관이 없다. 동화를 토대로 ..

푸른 소금

이현승 감독의 '푸른 소금'은 간이 덜 밴 소금구이같은 영화다. '첩혈쌍웅' 같은 1980년대 홍콩 느와르 정서와 세련된 뮤직비디오를 닮은 영상이 어우러졌는데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느와르 액션이라고 부르기에는 미흡하고, 오히려 로맨스물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저격용 소총을 휘두르는 여자 암살자와 알고도 모른체 하는 조폭 두목의 연정이라는 설정 자체부터 부자연스럽다. 그 속에 한 없이 강한 척 하는 여전사와 마냥 쿨한 아저씨의 이미지는 오히려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영화의 성격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이야기 또한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어차피 영화라는게 허구이긴 하지만 손쉽게 오가는 총기 거래나 서부극처럼 총질이 난무하는 장면들은 국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쳤다. 또 실종된 여주인공의 친구를..

영화 2011.09.10

살인의 추억 (블루레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년)은 우리 영화 중에서 걸작을 몇 편 꼽으라면 꼭 들어갈 작품이다. 탄탄한 내용과 연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훌륭한 영상, 애잔한 음악까지 이토록 완벽한 작품이 있을까 싶다. 김광림의 연극 '날 보러와요'를 각색한 이 작품은 그 해 500만명을 넘기며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 내용은 1986년부터 91년까지 경기 화성에서 6년간 10명의 부녀자가 죽은 연쇄강간살인사건을 다뤘다. '화성 연쇄 살인'으로 통하는 이 사건은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하고 공소 시효를 넘겨 영구 미제 사건이 됐다. 봉 감독은 안개 속처럼 뿌연 사건의 한 가운데서 범인을 쫓는 형사들의 안타까운 심정에 초점을 맞춰 숨막히는 드라마로 그려 냈다. 어찌나 심리 묘사가 탁월한 지 절로 형사들의 심정에 ..

라듸오 데이즈

하기호 감독의 데뷔작 '라듸오 데이즈'(2008년)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류승범, 김뢰하, 이종혁 등 괜찮은 배우들과 국내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가지고도 제대로 영화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 웃음에 집착한 탓이 아닐까 싶다. PPL과 광고 등 요즘 방송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30년대 라디오 방송에 덧입혀 풍자한 코미디는 독특했다. 여기에 배우들의 스캔들, 조금만 인기있으면 늘리는 연장방송과 여배우들의 주연 다툼 등 현대 방송극의 문제점도 날카롭게 꼬집었다. 그러나 아이들 학예회처럼 너무 난삽하게 이야기를 벌려놓다 보니 구성이 산만해졌다. 그나마 볼 만 한 것은 맨 마지막의 엔딩 타이틀 뿐이었는데, 이마저도 영화 '자토이치'를 흉내낸 감이 강하다. 2.35 대 1 애..

음란서생 (한정판)

김대우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음란서생'(2006년)은 참으로 재치있는 작품이다. 야설, 동영상, 댓글 등 현대적인 요소들을 사극에 절묘하게 대입한 솜씨가 일품이다. 무엇보다 김탁환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정교하게 구성한 드라마가 돋보인다. 또 감칠맛나는 대사도 매력적이다. 꽤나 문학적으로 표현한 대사들을 보면 김 감독은 소설을 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사대부 집안의 관리가 우연히 음란소설을 접하면서 졸지에 야설 작가로 변신하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 관리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왕의 여인인 후궁과 사랑에 빠지면서 이야기는 아슬아슬하게 전개된다. 어찌보면 감독은 음란이라는 주제를 통해 금기시된 모든 것들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기도 하다. 과거나 지금이나 버젓이 드러낼 수 없는 음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