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김상경 7

생활의 발견 (블루레이)

강원 춘천의 청평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회전문이 있다. 돌아가는 문이 아니라 큰 흐름이 바뀌는 터닝포인트 같은 문이란 뜻이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가 끝나고 해탈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문이다. 더불어 여기 얽힌 전설도 있다. 당 태종의 딸 평양공주를 사랑했던 청년이 있었으나 평민 주제에 공주를 넘본 죄로 처형당했다. 청년은 죽어 상사뱀이 돼 공주의 몸을 휘감았다. 별의별 방법을 써도 뱀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신라에서 온 중이 청평사에 가서 불공을 드리라고 일러줬다. 공주가 청평사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는 동안 떨어졌던 뱀은 공주가 나오지 않자 회전문으로 들어섰고, 그 순간 벼락이 쳐서 죽고 말았다. 공주는 죽은 뱀을 불쌍히 여겨 묻어줬다. 그러나 어찌 보면 뱀에게는 죽음이 곧 질긴 집착의 고통에서 ..

하하하 (DVD)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2009년)는 제목 그대로 그 황당함에 하하하 웃게 되는 영화다. 언제나 그렇듯 홍 감독 특유의 엉뚱함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의 영화를 여러 편 보았으니 이제는 익숙할 만도 한데, 언제나 그렇듯 그 엉뚱함이 낯설면서도 유쾌하다. 이 영화는 구성이 독특하다. 청계산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와 후배가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들이 최근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풀어간다. 그들이 각각 따로 경험한 낯선 이야기 속에는 공교롭게 두 사람이 동시에 존재한다. 서로가 서로를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한 셈이다. 참으로 희한하면서도 기발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주체적인 삶이 타인에게는 객체일 수 있고, 반대로 그들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하하하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그렇듯 허허롭다. 영화 중간 어디서나 끊어도 이야기 전개에 지장이 없는 내러티브는 도대체 스토리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헷갈린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은 '하하하'도 마찬가지. 캐나다로 떠나기 앞서 선배와 등산을 간 주인공이 청계산 중턱에서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영화는 주거니 받거니 건네는 술잔처럼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오가며 진행된다. 화자의 관점은 둘이지만, 사실 그 둘이 풀어놓는 이야기는 같은 내용이다. 공교롭게 같은 기간 통영에 머문 두 사람은 서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지만 같은 주변인물들을 공유하며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것. 그렇게 같은 사건이 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 것 또한 세상살이의 묘미요, 다양성의 ..

영화 2010.06.13

살인의 추억 (블루레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년)은 우리 영화 중에서 걸작을 몇 편 꼽으라면 꼭 들어갈 작품이다. 탄탄한 내용과 연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훌륭한 영상, 애잔한 음악까지 이토록 완벽한 작품이 있을까 싶다. 김광림의 연극 '날 보러와요'를 각색한 이 작품은 그 해 500만명을 넘기며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 내용은 1986년부터 91년까지 경기 화성에서 6년간 10명의 부녀자가 죽은 연쇄강간살인사건을 다뤘다. '화성 연쇄 살인'으로 통하는 이 사건은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하고 공소 시효를 넘겨 영구 미제 사건이 됐다. 봉 감독은 안개 속처럼 뿌연 사건의 한 가운데서 범인을 쫓는 형사들의 안타까운 심정에 초점을 맞춰 숨막히는 드라마로 그려 냈다. 어찌나 심리 묘사가 탁월한 지 절로 형사들의 심정에 ..

화려한 휴가

대학에 들어가서 가장 처음 받은 충격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담은 비디오를 봤을 때였다. 주로 해외 언론들이 촬영한 사진과 뉴스를 기록한 비디오 테이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했다. 피투성이의 시체들이 나뒹구는 이미지는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도저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비디오 테이프를 본 80년대 대학생들이라면 공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1980년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이 벌어졌던 당시에 중학생이었지만 그런 일이 국내에서 벌어지는 줄은 까맣게 몰랐다. 뉴스나 신문에서도 언론검열때문에 제대로 보도조차 안했고 서슬퍼런 군사정권 아래서 아무도 그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비로서 책으로, 비디오테이프로, 육성으로 접할 수 있었다. 김지훈 감독의 '화려..

영화 2007.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