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김수철 3

개그맨(블루레이)

이장호, 김수용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배창호 감독의 조감독을 오랫동안 한 이명세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감독으로 입봉 했다. 나름 참신한 아이디어로 공들여 쓴 시나리오를 제작사 여러 곳에 보여줬으나 모두 거들떠보지 않았다. 소설가 최인호는 호평했으나 정작 제작사들은 무명의 신인에게 영화를 맡길 생각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배창호 감독에게 상의한 결과 직접 영화를 만들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연출한 데뷔작이 바로 '개그맨'(1988년)이다. 내용은 영화감독을 꿈꾸며 극장식당 카바레에서 일하는 무명의 개그맨 이종세(안성기)가 배우를 꿈꾸는 이발사 문도석(배창호), 극장에서 건달들에게 쫓기다 구출된 여인 오선영(황신혜)을 만나 은행을 터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197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종대와 문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박흥용의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호방한 화풍과 귀신같은 칼솜씨를 지닌 맹인 검객의 독특한 이야기가 빛을 발하는 명작이다. 그림이 시원 시원하고, 정사 장면을 기왓장이 쏟아져 내리는 풍경으로 표현하는 등 탁월한 은유가 빛나는 작가주의 정신으로 충만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를 원작으로 한 이준익 감독의 동명 영화(2010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감독은 원작 만화에서 시골 진사의 서자로 나오는 주인공 견주를 명문 세도가의 서자로 설정해 당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밀어넣으며 시대극으로 만들었다. 신경질적인 왕을 통해 당파 싸움만 일삼는 조정을 비꼬는 장면들을 보면 '왕의 남자'나 '황산벌'처럼 권세가들을 조롱하는 이 감독 특유의 비판 정신은 살아 있다. 하지만 풍자와 해학 속에 뼈있는 메시지를 ..

박하사탕 (블루레이)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후, 철로 위에 올라 선 설경구의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며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의 인상이 어찌나 강렬하던 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년) 하면 우선 떠오른다. '초록 물고기'로 감독 데뷔한 이창동 감독이 두 번째로 만든 이 영화는 설경구가 연기한 영호라는 인물이 겪은 20년을 다루고 있다. 1979년부터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1999년까지 현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이 한 인물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를 위해 각본을 직접 쓴 이 감독은 영호의 죽음부터 과거로 시간을 되짚어 올라가는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했다.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는 방식이 처음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