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김인권 8

신의 한수(블루레이)

조범구 감독의 '신의 한수'(2014년)는 내기 바둑꾼들의 목숨을 건 승부와 복수를 다룬 호쾌한 액션극이다. 바둑 하면 가만히 앉아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는 놀이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영화는 그 같은 통념을 뒤집었다. 내기 바둑을 벌이다가 범죄 조직의 음모에 빠져 형을 잃은 주인공(정우성)이 마치 외인부대 같은 재야 고수들을 모아서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바둑판을 두고 꾼들이 벌이는 치열한 암수 대결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칼과 피가 난무하는 화끈한 액션이 펼쳐진다. 특히 액션 장면이 의외로 섬뜩할 만큼 잔혹하다. 손가락으로 눈동자를 때려서 터뜨리는가 하면 바둑판에 칼을 못 박아 놓고 혀를 자르는 등 끔찍한 장면도 등장한다. 이렇게까지 가혹한 표현이 필요할까 싶지만 어찌보면 요란한 ..

타짜 신의 손(블루레이)

강형철 감독의 '타짜 신의 손'(2014년)은 최동훈 감독의 '타짜'(2006년) 후속작이다. 8년 만에 돌아온 이 작품은 허영만 화백의 4부작 시리즈 '타짜' 가운데 2부인 '신의 손'을 원작으로 한다. 전작에서는 고니가 아귀, 편경장 등 대단한 화투 고수들과 얽혀 인생 노름을 펼치는데 반해 이번 작품에서는 고니의 조카인 대길이 삼촌 못지 않은 신의 손으로 등극하는 과정을 다뤘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속이는 화투판 노름이 결국 피를 부르는 복수극으로 이어지는 설정은 전작과 같다. 다른 점이라면 색다른 배역들과 자잘한 에피소드들이다. 차별화 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이 두 가지인데, 그 중에서 배역만 놓고 보면 전작에 비해 손해를 봤다. 전작에서는 조승우, 김혜수, 백윤식 등 쟁쟁한 배우들이 주요 배역을 맡..

쎄시봉

서울 명동에 있었던 통기타 살롱 쉘부르, 무교동에 자리 잡았던 음악감상실 쎄시봉은 1960년대말, 70년대를 풍미했던 통기타 문화의 상징이다. 이런 곳들을 통해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 양희은 이태원 박은희 남궁옥분 이문세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당연히 지금도 쉘부르, 쎄시봉 하면 이들의 얼굴과 함께 유명했던 노래들이 떠오른다. 그만큼 쎄시봉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1960, 70년대 젊은이들의 문화를 대표하는 노래들과 가수들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김현석 감독의 영화 '쎄시봉'은 여러모로 실망스럽다. 쉘부르와 쎄시봉으로 대표되는 시대의 노래들과 가수들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들을 소품처럼 차용해 남녀의 흘러간 사랑 이야기를 신파극처럼 써..

영화 2015.02.07

박하사탕 (블루레이)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후, 철로 위에 올라 선 설경구의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며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의 인상이 어찌나 강렬하던 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년) 하면 우선 떠오른다. '초록 물고기'로 감독 데뷔한 이창동 감독이 두 번째로 만든 이 영화는 설경구가 연기한 영호라는 인물이 겪은 20년을 다루고 있다. 1979년부터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1999년까지 현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이 한 인물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를 위해 각본을 직접 쓴 이 감독은 영호의 죽음부터 과거로 시간을 되짚어 올라가는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했다.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는 방식이 처음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이..

광해, 왕이 된 남자 (블루레이)

추창민 감독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가 돋보이는 점은 영리하게도 역사적 빈틈을 파고 들어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영화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에서 재위 기간 15일이 비어 있는 점에 착안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내용은 끊임없이 암살을 의심했던 광해군이 자신과 똑닮은 가짜를 내세워 위기를 모면하는 줄거리다. 쌍둥이처럼 닮은 가짜를 내세워 암살 위험을 피하거나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 이야기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명작 '카게무샤'(http://wolfpack.tistory.com/entry/카게무샤) 등에서 일찍이 써먹었던 방법이어서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제작진은 이를 자잘한 에피소드와 우리식 웃음으로 채워넣어 차별화를 꾀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