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베트남 12

미스 사이공(블루레이)

미셀 쇤베르크가 작곡하고 알랭 부브리가 가사를 쓴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오페라에 비유하자면 '나비 부인'과 닮았고, 우리네 악극에서 찾자면 '홍도야 울지마라'와 유사하다. 좋게 말하면 순애보이고 깎아내리면 신파라는 얘기다. 내용은 월남전 때 사랑하게 된 사이공 매춘부와 미군 청년이 월남 패망과 함께 헤어지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한 남자를 잊지 못해 지고 지순한 사랑으로 기다리는 이야기는 '나비 부인'과 닮았고 뜻하지 않은 사고를 일으켜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홍도야 울지마라'를 떠올리게 한다. 신선한 점은 결코 쉽지 않은 월남전이라는 소재를 뮤지컬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전쟁통에 몸을 팔게 된 베트남 여인과 파병 군인간의 사랑, 어떻게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벗어나려는 포주, 옛 애인을 잊지..

영웅본색3 (블루레이)

서극 감독의 '영웅본색3'(1988년)는 여러모로 낯선 영화다. 전작들인 영웅본색 1,2와 너무 다른 이야기와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전작들의 주인공 가운데 주윤발만 등장하고 다른 사람들은 나오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무대가 홍콩이 아니다. 일부 홍콩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베트남에서 벌어진다. 그것도 홍콩 갱 조직 내의 음모와 배신, 의리가 얽힌 전형적인 홍콩 느와르 스타일이 아닌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한 남자들의 순애보에 초점을 맞췄다. 이 점이 기존 영웅본색 시리즈를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실망을 줬고, 반면 기존 작품들과 차별화된 색다른 요인이기도 했다. 이처럼 영화의 성격이 많이 달라진 것은 제작을 맡은 서극이 직접 감독까지 맡았기 때문이다. 그는 2편 제작 때부터 의견..

디어 헌터 (블루레이)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The Deer Hunter, 1978년)는 러시안 룰렛이라는 게임을 전세계에 알린 영화로 유명하다. 처음 이 영화에서 러시안 룰렛 게임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절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이 게임은 두 사람이 6연발 권총에 탄알을 한 발 장전한 뒤 약실을 돌려서 서로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도박이다. 약실이 회전하기 때문에 총알이 어디에 있는 지 모르는 상태에서 목숨을 걸고 하는 미친 게임이다. 죽을 확률은 당연히 6분의 1. 제정 러시아 시대에 군인들이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상대로 이런 게임을 벌였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는 월남에 파병된 미군들이 베트콩들에게 포로로 잡힌 뒤 이 게임을 강요당한다. 치미노 감독은 이를 ..

연인 (블루레이)

1914년 베트남의 호치민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여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부유했던 중국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16세였고, 중국 남성은 30대였다. 그 잊지 못할 이야기를 소설로 쓴 작품이 바로 '연인'이고, 이를 장 자크 아노 감독이 같은 제목의 영화(L'Amant, 1992년)로 만들었다. CF 감독 출신인 아노는 베트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살 떨리는 두 사람의 사랑을 탐미적이고 관능적인 카메라워크를 통해 아름다운 영상으로 재현혔다. 가난한 어린 여인과 돈 많은 중국 청년의 연애는 단순 사랑 이야기를 뛰어넘어 당시 인도차이나에 흐르던 빈부 격차와 인종 문제까지 다뤘다. 여기에 어린 여인에 대한 집착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로리타'를 연상케 한다. 국내..

로스트 코맨드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1980년대 대학가 주변에는 사회과학서점이 꽤 많았다. 그들은 당시 금서로 묶여 있던 책들을 대학가에 공급하는 주요 통로였다. 지금 보면 별 것도 아닌 내용들을 당시 군사독재정권은 불온하다는 이유로 금서로 묶었다. 불온하다는 말은 정권 유지에 도움이 안된다는 소리였다. 그때 읽었던 책 중에 좀 어려웠던 책이 알제리 독립을 위해 몸바쳤던 프란츠 파농의 책들이었다.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검은 피부 흰 가면들' '혁명의 사회학' 등 그가 쓴 책들을 비롯해서 '프란츠 파농 연구' 등 그에 대한 연구서들도 내용 이해가 쉽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던 것이, 정신과 의사출신이었던 그는 정치적 독립에 정신분석학적인 인간성 회복을 접목한 탈식민화를 주장했기 때문에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