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사극 4

명량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의 최대 난관은 바로 이순신을 그리는 것이다. 1970년대 국민학교 교과서에 무과 시험 중 낙마했으나 버들가지로 다리를 동여매고 시험을 치른 장군의 일화가 등장할 만큼 익숙한 존재인지라, 피상적으로라도 장군을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군에 얽힌 연대기적 이야기들은 동어반복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인간 이순신을 그려야 하는 것이 난제인데, '난중일기'를 제외하고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사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최단 기간 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4년)도 마찬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1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해전 장면은 볼 만 하나 이순신의 모습이 피상적으로 ..

영화 2014.08.15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박흥용의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호방한 화풍과 귀신같은 칼솜씨를 지닌 맹인 검객의 독특한 이야기가 빛을 발하는 명작이다. 그림이 시원 시원하고, 정사 장면을 기왓장이 쏟아져 내리는 풍경으로 표현하는 등 탁월한 은유가 빛나는 작가주의 정신으로 충만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를 원작으로 한 이준익 감독의 동명 영화(2010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감독은 원작 만화에서 시골 진사의 서자로 나오는 주인공 견주를 명문 세도가의 서자로 설정해 당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밀어넣으며 시대극으로 만들었다. 신경질적인 왕을 통해 당파 싸움만 일삼는 조정을 비꼬는 장면들을 보면 '왕의 남자'나 '황산벌'처럼 권세가들을 조롱하는 이 감독 특유의 비판 정신은 살아 있다. 하지만 풍자와 해학 속에 뼈있는 메시지를 ..

광해, 왕이 된 남자 (블루레이)

추창민 감독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가 돋보이는 점은 영리하게도 역사적 빈틈을 파고 들어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영화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에서 재위 기간 15일이 비어 있는 점에 착안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내용은 끊임없이 암살을 의심했던 광해군이 자신과 똑닮은 가짜를 내세워 위기를 모면하는 줄거리다. 쌍둥이처럼 닮은 가짜를 내세워 암살 위험을 피하거나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 이야기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명작 '카게무샤'(http://wolfpack.tistory.com/entry/카게무샤) 등에서 일찍이 써먹었던 방법이어서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제작진은 이를 자잘한 에피소드와 우리식 웃음으로 채워넣어 차별화를 꾀했다. 그..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블루레이)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2003년)는 눈이 즐거운 영화다. 내용이 야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18세기 조선시대 풍속을 재현한 의상과 음식, 풍경 등 갖가지 볼거리가 화사한 색감으로 수놓듯 펼쳐진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실제 고증을 거쳤고, 현재 제일모직 전무로 있는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씨의 도움을 받았다. 정구호씨는 미술감독으로 참여해 '구호' 브랜드에서 보여준 패션감각을 배우들의 의상과 각종 소품 등에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이 작품은 색이 곱다. 배우들이 입고 나온 파스텔톤의 의상부터 진한 원색까지 손대면 그대로 묻어날 듯 색이 선명하다. DVD 타이틀에서는 극장에서 본 색이 제대로 살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블루레이는 근접한 느낌이다. 영화의 기본 내용은 조선시대 바람둥이 양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