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스릴러 8

이창(4K 블루레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명작 '이창'(Rear Window, 1954년)을 보면 아파트가 감옥 같다. 각각의 독립된 가구는 거대한 교소도의 감방처럼 보이며 이들을 지켜보는 제임스 스튜어트는 간수같다. 히치콕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산물인 아파트를 소재로 공포스런 밀실 스릴러를 만들었다. 실제로 아파트 주민들은 커다란 건물에 함께 살지만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아무도 모른다. 그만큼 현대인의 무관심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은 이웃집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살인을 다뤘다. 정작 옆집에서는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아무도 모르다가, 개가 죽어 비명을 지른 여인 때문에 모든 사람이 뛰쳐나와 관심을 기울이는 장면으로 히치콕은 현대인의 무관심을 꼬집었다. "이러고도 이웃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여인의 외침이 이를 단적..

현기증(4K 블루레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Vertigo, 1958년)은 개봉 당시 관객이나 평단의 반응이 시큰둥했다.유령 이야기를 들이대면서 너무 미적지근한 스토리로 흘렀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훗날 복잡다단한 심리적 갈등을 다룬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걸작으로 재조명됐다.내용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형사를 그만둔 주인공(제임스 스튜어트)이 유령에게 홀린 것으로 의심되는 친구의 부인(킴 노박)을 미행해 달라는 의뢰를 받으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고소공포증은 단순 증세를 떠나 이야기 전개상 아주 중요한 소재이다.형사가 갖고 있는 고소공포증은 사건을 완성하는 중요한 퍼즐이자 사건 전개의 발단이 된다. 원작은 피에르 부알로와 토마스 나르스작이 쓴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라는 소설이다.히치콕 감독은 원작의 줄..

숨바꼭질

허정 감독의 영화 '숨바꼭질'은 어떠한 단서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보는 게 좋다. 작은 힌트나 이야기 조차도 이 영화에서는 커다란 공명을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영화는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픽션이다. SBS의 '궁금한 이야기 Y'에서 방영된 '도둑 암호의 미스터리'편에서 감독이 힌트를 얻어 남의 집에 몰래 숨어사는 사람이라는 기발한 내용의 시나리오를 썼다. 물론 이 같은 소재가 영화에서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다. 김기덕 감독의 '빈 집'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아예 주인의 등 뒤에서 밥까지 먹는 대담한 행동을 한다. 그만큼 소재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구성해 끝까지 보게 만든다. 영화는 스릴러의 공포물의 형식을 적당히..

영화 2013.09.08

의혹의 그림자

"악당은 완전히 검은색이 아니고, 영웅도 완전한 흰색이 아니다. 세상은 모두 회색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이런 생각을 갖고 미스테리 스릴러 영화 '의혹의 그림자'(Shadow Of A Doubt, 1943년)를 만들었다. 실제로 영화 속 인물들은 이러한 이중성을 갖고 모호하게 처리됐다. 평화로운 작은 마을의 어느 가족에게 어느날 낯선 삼촌(조셉 코튼)이 찾아온다. 삼촌은 더 할 수 없이 친절하고 점잖은 신사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았는 지 아무도 모른다. 형사들이 삼촌의 뒤를 캐면서 여주인공 찰리(테레사 라이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빠진다. 결국 의문에 쌓인 삼촌의 정체와 마을의 이중성이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다. 마을의 이중성은 "세상이 불결한 돼지우리라는 것을 아니? 세상은 지옥이야. 그..

트럭

시체를 가득 실은 트럭에 올라탄 연쇄살인마.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체를 실어나르는 트럭 운전사와 살기 위해 도망치는 연쇄살인마의 위험한 동행이라는 설정은 '트럭'(2007년)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다. 하지만 이게 전부다. 범상치 않은 설정과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 반쪽이 보이는 표지에 반해 작품을 선택했다면 후회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성긴 설정이다. 누구나 그럴 법 하다며 고개를 끄덕일 만한 정교하고 치밀한 구성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우연과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반복적으로 되풀이 될 뿐이다. 이는 지나치게 설명을 생략하고 작위적인 내용으로 채운 권형진 감독의 연출을 탓할 수 밖에 없다. 느닷없는 룸살롱의 살인극이나 시체더미에 실린 여자가 죽지 않은 이유, 아이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