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에드 해리스 9

그래비티 (블루레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Gravity, 2013년)는 SF영화라기 보다 공포영화에 가깝다. 이 작품에는 두 가지 두려움이 나온다. 우선 첫 째는 끝모를 적막한 공간이 주는 절대 고독의 두려움, 즉 영화적 스토리가 주는 두려움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우주는 역설적 공간이다. 가장 탁트인 드넓은 공간이면서도 주인공을 옴짝달쌀 못하게 옥죄는 감옥처럼 역설적 이중성을 띄고 있다. 그 속에서 주인공은 '127시간'의 등장인물처럼 절대 고독과 마주한다. 더불어 이 영화는 갈등 구조를 빚어내는 적(適)이 없다. 소리마저 삼켜 버리는 우주 공간에 홀로 남겨진 여주인공이 상대해야 하는 적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적, 바로 자신이다. 절대 고독의 두려움 스스로 갖는 두려움은 시간이 흐를 수록 단단해져 희망의 ..

설국열차

봉준호 감독에 대한 기대가 컸는 지, 반대로 그가 느낀 부담이 좋지 않게 작용했는 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봉 감독이 새로 내놓은 영화 '설국열차'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살인의 추억'을 필두로 '괴물' '마더' 등 일련의 작품들이 나름 기대를 충족시켰기에 이 작품 역시 기대가 컸는데, 기대치를 너무 높였던 모양이다. 내용은 지구에 한파가 몰아쳐 빙하기를 맞은 뒤 무한궤도를 달리는 열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재산 규모에 따라 앞 칸은 돈 많은 사람들이 차지해 쾌적한 생활을 하고, 소위 꼬리로 불리는 뒷 칸은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터다. 결국 빈자들은 열악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앞 칸으로 쳐들어가려는 반란을 모의한다. 그때부터 열차는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병사를 실은 전투열차가 돼버린다. 달리는 열..

영화 2013.08.04

아폴로 13(블루레이)

때로는 실패가 주는 감동이 승리의 기쁨보다 더 클 때가 있다. 론 하워드(Ron Howard) 감독의 '아폴로 13'(Apollo 13, 1995년)은 바로 실패의 드라마를 이야기한다. 미국의 달 착륙 계획인 아폴로 프로젝트에 따라 13번째 발사된 우주선은 중간에 고장이 나서 달에 가지 못했다. 달은 고사하고 3명의 우주비행사는 졸지에 우주 미아가 돼서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운명에 처했다. 그때부터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과 지구에 남은 사람들이 지혜와 마음을 합쳐 귀한 작전을 펼친다. 생사기로에서 벌이는 그들의 귀환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론 하워드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적당한 드라마를 가미해 이야기를 윤기 있게 만들었다. 특히 검은색 일색인 우주와 한정된 공간인 우주선을 무대로 이야기를..

카핑 베토벤

아그네츠카 홀랜드 감독의 '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 2006년)은 버나드 로즈 감독의 '불멸의 연인'과 비슷하다. 베토벤의 죽음과 음악에 얽힌 수수께끼, 그리고 정체불명의 여인이 등장하고 이를 미스테리처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러나 구성, 연기 등 모든 면에서 버나드 로즈 감독의 걸작 '불멸의 연인'이 한 수 위다. 우선 설득력과 재미에서 불멸의 연인이 카핑 베토벤을 압도한다. 카핑 베토벤은 악필로 유명한 베토벤의 악보를 받아적은 것으로 설정된 가공의 여인 안나 홀츠가 등장해 교향곡 9번 '합창'과 '대푸가' 작곡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하지만 안나 홀츠라는 존재부터 가공이다보니 전개되는 이야기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물론 '불멸의 연인'도 베토벤의 여인을 정확히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