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유니버셜 5

이창(4K 블루레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명작 '이창'(Rear Window, 1954년)을 보면 아파트가 감옥 같다. 각각의 독립된 가구는 거대한 교소도의 감방처럼 보이며 이들을 지켜보는 제임스 스튜어트는 간수같다. 히치콕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산물인 아파트를 소재로 공포스런 밀실 스릴러를 만들었다. 실제로 아파트 주민들은 커다란 건물에 함께 살지만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아무도 모른다. 그만큼 현대인의 무관심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은 이웃집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살인을 다뤘다. 정작 옆집에서는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아무도 모르다가, 개가 죽어 비명을 지른 여인 때문에 모든 사람이 뛰쳐나와 관심을 기울이는 장면으로 히치콕은 현대인의 무관심을 꼬집었다. "이러고도 이웃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여인의 외침이 이를 단적..

새(4K 블루레이)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익숙한 존재에 이만큼 강한 공포감을 불어넣은 영화도 드물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영화 '새'(The Birds, 1963년)는 어느날 느닷없이 인간을 공격하는 새떼를 다룬 이야기다. 다프네 드 모리에의 단편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원작처럼 왜 새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지 끝까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저 새들은 거대한 무리를 지어 맹목적으로 인간을 공격하고 온 도시를 뒤덮는다. 새떼가 사람을 습격해 눈을 파먹고, 나무 문을 뚫는 장면은 공포 그 자체다. 이를 위해 히치콕 감독은 다양한 기술을 동원해 공포를 시각화했다. 컴퓨터그래픽이 없던 시절, 히치콕은 순전히 아날로그 기술로 공포를 창조했다. 소듐조명을 이용한 매트프린팅 기법..

프렌지

거장이 돌아 왔다. '마니' '찢겨진 커튼' '토파즈' 등 일련의 작품이 잇달아 실패하며 쓴 맛을 본 알프레드 히치콕은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더 이상 스타시스템에 의존하거나 스파이물이 아닌 그의 장기인 서스펜스 스릴러로 돌아갔다. 그 결과 나온 작품이 바로 후기 걸작인 '프렌지'(Frenzy, 1972년)다. 명불허전, 결코 위대한 감독 히치콕의 이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이 작품은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다. 아더 라 번의 '피카딜리, 레스터 광장이여 안녕'이란 원작 소설을 토대로 만든 이 작품은 성기능 장애가 있는 연쇄살인마가 여자들을 잔인하게 넥타이로 목졸라 죽이며 쾌감을 얻는 내용이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녹아 있다. 우선 연쇄살인범의 잔인한 범죄 행각에는 1946년 여성 2명을 잔..

찢겨진 커튼

유니버셜에서 나온 히치콕 컬렉션 화이트 디지팩에 포함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찢겨진 커튼'(Torn Curtain, 1966년)은 '찢어진 커튼'이 맞다. 우리 말에 없는, 영어의 수동태식 번역으로 잘못 붙인 제목이다. 잘못 번역한 제목 만큼이나 이 작품은 히치콕에게 재앙이었다. 히치콕은 '마니'(http://wolfpack.tistory.com/entry/마니)의 실패 이후 제작사인 유니버셜스튜디오의 주장에 따라 쟁쟁한 스타시스템을 도입해 영화를 만들었지만, 결과는 '마니'보다 더 처참한 실패였다. 내용은 미국의 유명 과학자가 망명을 가장해 동독에 숨어 들어 핵무기 방어시스템 기술을 훔치는 내용으로, 일종의 이중 스파이를 다룬 스파이 스릴러였다. 여기에는 공산주의를 싫어한 히치콕의 시각도 반영됐다...

로프

영국 희곡작가 패트릭 해밀턴의 원작을 각색한 '로프'(Rope, 1948년)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공동설립한 영화사 트랜스애틀란틱의 첫 작품이자, 히치콕의 첫 번째 컬러영화다. 히치콕은 해밀턴의 희곡에 유명한 실화인 레오폴드와 로엡 사건을 섞었다. 1924년 미국 시카고대 학생이며 동생애 연인이었던 네이던 레오폴드와 리차드 로엡은 니체의 초인론에 빠져 우수한 두뇌를 입증하려고 이유없이 친구를 살해했다. 결국 꼬리가 밟혀 둘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히치콕은 이야기 뿐 아니라 구성도 연극을 그대로 따랐다. 즉, 영화는 마치 연극처럼 컷 없이 처음부터 한 씬으로 쭉 이어진다. 엄밀히 말하면 배우의 등을 크게 클로즈업으로 잡는 식의 트릭을 써서 컷을 넘겼지만 영화 속에서는 어찌나 자연스럽던 지 눈여겨 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