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이윤기 3

남과 여(블루레이)

오래된 영화팬들은 남과 여라면 클로드 를루슈 감독이 1966년에 만든 걸작 '남과 여'(A Man And A Woman)를 우선 떠올린다. 무려 60여 년 전 작품인데 지금 다시 봐도 아름다운 영상과 아련한 음악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명작이다. 이윤기 감독도 를루슈 감독의 작품을 의식하고 '남과 여'(2015년)를 만들지 않았을까.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을 다룬 점은 두 작품이 비슷하지만 기본적인 설정이 다르다. 클로드 를루슈와 이윤기의 '남과 여' 를루슈 감독의 작품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사는 남녀이지만 홀아비와 미망인이어서 심리적 제약은 없다. 반면 이윤기 감독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지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각 유부남 유부녀여서 물리적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커다란 심리적 제약을 갖고 있다..

여자, 정혜

이윤기 감독의 작품은 호흡이 긴 유럽 영화에 가깝다. '멋진 하루'도 그렇지만 그의 장편 데뷔작인 '여자, 정혜'(2005년)는 더더욱 찬찬한 시선의 영상이 긴 호흡으로 펼쳐진다.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여자 정혜(김지수)의 일상을 따라가는 영화는 숏과 숏 사이를 긴 침묵이 메우고 있다. 주인공 정혜의 차분한 시선으로 풍경과 사물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영상은 그만큼 할리우드 스타일의 빠른 커트에 익숙해 있다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화려한 볼거리도 없다.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 불쑥 카메라를 들이댄 것 처럼 무심한 영상이 시종일관 펼쳐진다. 그만큼 세심한 표정연기가 필요해 배우들이 연기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연기가 아닌 것 처럼 가장하는 연기가 가장 힘들..

멋진 하루 (블루레이)

돈이란 사람을 비루하게 만든다. 특히 채무로 얽힌 인간 관계는 참 피곤하다. 여기에 채무 관계가 헤어진 연인사이라면, 생각하기 싫을 만큼 답답하고 한심스러워 진다.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2008년)는 제목과 달리 바로 그 불편한 인간 관계에 카메라를 들이 댔다. 옛 남자(하정우)가 꿔간 돈 350만 원을 받기 위해 나타난 여자(전도연)는 남자와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며 채권 수금에 나선다. 수중에 돈이 없는 남자는 또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몇 십만 원씩 다시 꿔서 여자의 돈을 갚는다. 그 과정이 지난하고 신산스럽다. 그러면서도 남자가 한심스럽고 얄밉지만 밉지 않다.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남자의 모습 속에 따스한 진정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자를 사기꾼이 아닐까 의심했던 마음은, 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