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장예모 9

귀주이야기(블루레이)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귀주 이야기'(秋菊打官司, The Story Of Qiu Ju, 1992년)는 '국두' '홍등' '붉은 수수밭' 등 그의 전작들과 결이 다른 작품이다. 중국 시골에서 벌어지는 작은 소동을 통해 중국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진지하고 무거웠던 그의 전작들과 달리 페이소스가 짙게 깔린 블랙코미디 풍이다. 천위안빈의 중편 소설 '만가소송'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이 우스우면서도 씁쓸하고 안타까워 마냥 웃고 있을 수만도 없게 만든다. 내용은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알고 지내는 중국 시골에서 촌장과 아낙(공리)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콴시와 미엔쯔 아낙의 남편이 촌장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고환을 걷어차이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남편은 크게 다치지 않아..

인생(블루레이)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인생'(活着, 1994년)은 중국 현대사의 굴곡을 한 사내의 삶을 통해 풀어낸 수작이다. 중국의 유명 작가 위화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푸궤이(거요우, 갈우)라는 사내의 가정을 중심으로 중국 현대사가 안고 있는 질곡을 다뤘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큰 재산을 지녔던 푸궤이의 인생은 중국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새옹지마를 떠올리게 한다. 엄청난 물림 재산을 도박으로 다 날려 알거지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지만 1940년 국공 내전에서 승리하며 장개석 군을 몰아낸 모택동의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뒤 오히려 무산자 신세여서 살아남게 된다. 그의 저택을 차지한 노름꾼은 반동 지주로 몰려 공개 처형당한다. 1960년대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위해 모택동이 주도한..

홍등(블루레이)

'붉은 수수밭' '국두' 등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초기작은 여성의 삶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특히 중국의 오랜 전통처럼 굳어진 유교 사상과 봉건제적인 삶에 뿌리 깊이 사로잡혀 남자에게 종속된 여성의 비극적인 삶을 주로 다뤘다. 이를 통해 과거의 잘못된 전통과 단절하고 주체적이고 평등한 인격적 존재로 바로 서는 여성을 강조한다. 그것이 비단 중국이 요구하는 생산주체이자 혁명주체인 사회주의적 여성상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전 세계적 추세인 양성 평등의 보편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축첩제도를 다룬 영화 '홍등'(大紅燈籠高高掛 1991년)도 마찬가지다. 장이머우 감독이 이 작품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중국의 봉건제적 전통인 축첩 제도다. 주인공인 송련(공리)은 대학을 중퇴..

붉은 수수밭(블루레이)

중국판 '분노의 포도'라고 할 수 있는 '붉은 수수밭'(紅高梁, 1988년)은 장이머우(장예모)라는 걸출한 중국 감독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그는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로 중국 제5세대 감독의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 모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다분히 민족적이며 사회주의적이다. 돈 때문에 양조장을 운영하는 쉰 살 넘은 노총각이자 나병 환자에게 팔려간 젊은 여성(공리)의 이야기다. 시집갈 때까지만 해도 여성은 다분히 일부종사(一夫從事)의 틀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남편의 죽음으로 술도가를 맡게 되면서 여성은 여장부로 변신한다. 남정네들을 이끌고 술도가를 일으키며 급기야 항일 무장투쟁에 나서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여인은 더 이상 봉건적 잔재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그레이트 월(블루레이)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그레이트 월'(The Great Wall, 2016년)은 중국 문화에 대한 우월성과 자만심이 가득한 판타지 영화다. 혹독하게 말하면 서양인들을 겨냥한 중국 우월주의를 알리는 프로파간다에 가깝다. 내용은 신비의 검은 가루를 찾아서 중국으로 흘러든 두 명의 서양 전사가 만리장성을 지키는 중군 군대와 함께 괴수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타오티에라고 부르는 괴수들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도철(饕餮)이다. 탐할 도(饕)에 탐할 철(餮)이라는 글자처럼 끝없는 욕심의 상징인 이 괴수는 용의 아홉 자식 중 하나다. 거대한 소의 몸에 호랑이 이빨과 양의 뿔을 지닌 이 괴수는 무시무시한 괴력과 파괴의 화신으로 꼽힌다. 영화 속에서는 이 괴수들이 떼거지로 달려들어 사람을 잡아먹는다. 원래 이민족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