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저패니메이션 36

늑대아이 (블루레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은 선이 곱다. 전작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 '섬머워즈' 등을 보면 순정 만화를 보는 것처럼 인물들의 얼굴선이나 윤곽을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는 선으로 살렸다. 마치 낭창낭창한 여인의 허리를 보는 느낌. 이처럼 고운 선의 캐릭터가 실사에 가까운 서정적인 배경 속에 녹아 들어 감성을 자극한다. '늑대아이'(2012년)도 마찬가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나고 자란 일본 도야마현의 아름다운 산골을 배경으로 가는 선의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 작품도 이야기는 범상치 않다. 대학 강의실에서 우연히 만난 늑대인간 청년에게 끌려 아이를 갖은 여성이 혼자 힘으로 늑대의 피를 물려 받은 두 아이를 키우는 내용이다. 반인반수이다 보니 인간의 본성과 짐승의 습성을 함께..

첼리스트 고슈

평생을 가난하게 산 일본의 시인 겸 작가 미야자와 겐지는 꽤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났다. 전당포 주인이었던 아버지는 벌이가 쏠쏠했다. 그런데 겐지의 생각은 달랐다.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해 돈을 벌고 싶지 않았던 그는 농고를 나와 농업학교 교사가 됐다. 일부러 허름한 오두막에 살며 직접 농사를 짓고, 비료를 이용한 새로운 농사법도 연구했다. 또 고단한 농민들을 위해 연주할 목적으로 첼로를 배웠다. 하지만 장마와 냉해로 애써 연구한 농업 기술이 무효가 됐다. 농민들은 기대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자 그에게 등을 돌렸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어렵사리 자비로 펴낸 한 권의 시집과 한 권의 동화집은 딱 다섯 권 팔렸다. 당시 일본 사회는 군부 주도의 군국주의가 한창 팽배하던 시절이라 시집과 동화책이 파고들 틈이 없었다..

자이언트 로보 : 지구가 정지하는 날 (블루레이)

예전 DVD로 나온 로봇 애니메이션 '자이언트 로보 : 지구가 정지하는 날'(1992년)을 보고 반한 것은 우선 노래 때문이다. 거대한 로봇이 버티고 선 화면 위로 뜻밖에도 도니제티의 유명한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흘렀다. 로봇 만화에 뚱딴지처럼 들어간 오페라 아리아가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들으면 들을 수록 절절한 비장미가 살아나는게 잘 어울렸다. 오래된 신파극처럼 다소 감정과잉으로 과장된 감도 있지만 오페라 아리아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로봇 애니메이션도 없을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로봇물에 들어간 클래식 음악만큼이나 그림 또한 엉뚱하다. 거대한 로봇들 사이로 중국 고전인 삼국지와 수호지에 나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한 쪽에선 로봇들이 광선을 쏘아대는 사이로 고색창..

메모리즈 (블루레이)

저패니메이션 '메모리즈'(Memories, 1995년)가 블루레이 타이틀로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극장 개봉도 10여년이 지난 지난해 11월에 뒤늦게 했고, DVD 조차 아예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블루레이 타이틀로 나오다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갑다. 특별히 이 작품이 더 반가운 이유는 오래전 봤던 조잡한 비디오 테이프 때문이다.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이어서 국내서 이 작품을 구하기 힘들었던 1990년대 후반, 일본 애니메이션을 아주 좋아했던 친구가 복사해 준 비디오테이프에 이 작품이 들어 있었다. 일본 LD를 카피한 것으로 알려진 복제 비디오테이프는 화질이 매우 열악했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재미있는 소재와 그림, 음악이 어우러져 새로운 신세계를 열어준 느낌이었다. 그동안 좋..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블루레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저패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년)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탄생을 가져온 도화선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이 성공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함께 독립해 지브리 스튜디오를 만들어 '천공의 성 라퓨타'(http://wolfpack.tistory.com/entry/천공의-성-라퓨타), '이웃집 토토로'(http://wolfpack.tistory.com/entry/이웃집-토토로-블루레이), '반딧물의 묘'(http://wolfpack.tistory.com/entry/반딧불의-묘) 등 숱한 명작들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기계와 환경에 관심이 많은 하야오 감독의 특성이 잘 반영됐다. 세계 전쟁 후 황폐화된 지구에서 인간이 독을 내뿜는 균류, 식물, 곤충과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