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저패니메이션 36

이웃집 토토로 (블루레이)

내게 있어서 지브리 스튜디오의 시작과 끝은 '이웃집 토토로'(1988년)이다. '미래소년 코난' '루팡 3세' 등 미야자키 하야오를 알린 작품은 많지만 그가 세운 지브리스튜디오를 제대로 알게 해 준 작품은 명작 애니메이션인 '이웃집 토토로'였다. 수채화 같은 맑고 투명한 색감과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야기 등 동화책 같은 이 작품은 어린 시절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이야기는 일본 시골로 이사간 자매가 숲에 사는 도깨비와 친해지는 내용이다. 도깨비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본의 얼굴이 붉고 못된 뿔 달린 도깨비가 아니라 안아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동물같은 캐릭터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원래 일본 토코로자와 지방의 도깨비 이야기를 듣고, 여기에 너구리와 고양이를 섞은 듯한 캐릭터를 구상..

초속 5센티미터 (블루레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2007년)는 시간과 사랑에 대한 애니메이션이다. 시간이 흘러가면 사랑이 변할 수 밖에 없다. 묽어질 수도 있고 진해질 수도 있다. 유지태는 '봄날은 간다'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란 대사를 던졌지만, 사랑은 결코 불변이 아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사랑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초속 5cm라는 제목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변해가는 사랑을, 시간에 천착하는 구도자처럼 서정적인 그림으로 풀어냈다. 바람에 벚꽃이 흩날리는 속도를 의미하는 제목은 결국 사랑의 변화를 의미한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전학을 가는 남녀는 가슴속에 사랑을 간직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이 된다. 마음과 달리 그렇게 멀어진 그들의 사랑이..

아프로 사무라이 & 아프로 사무라이 레저렉션 (블루레이, 디렉터스 컷)

키자키 후미노리 감독의 '아프로 사무라이'(Afro Samurai, 2007년)와 속편격인 '아프로 사무라이 레저렉션'(Afro Samurai Resurrection, 2009년)은 독특한 제목 만큼이나 특이한 저패니메이션이다. 전통적인 사무라이 영화에 힙합 음악이 뒤섞이면서 시대와 국적을 알 수 없는 퓨전 작품이 돼버렸다. 내용은 최고의 검객을 뜻하는 1번 머리띠를 차지하기 위한 사내들의 싸움을 그렸다. 그런데 설정이 독특하다. 우선 주인공 사무라이는 검은 피부의 흑인이고, 악당은 기다란 쌍권총을 휘두른다. 언뜻 보면 일본 전국시대 같은데, 로봇도 등장하고 노인들은 휴대폰과 MP3를 들고 다닌다. 액션도 화끈하다. 앞뒤 안가리고 휘두르는 칼날에 피가 난무하고 신체가 조각난다. 그림의 정교한 맛은 떨어지..

인랑 (블루레이)

오시아 마모루 감독의 작품 세계는 독특하다. 그는 항상 권력 집단 내의 암투와 집단 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실존주의에 집착한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가 그랬고, '공각기동대'는 그 절정을 이룬 작품이다. '인랑'(2000년)도 예외가 아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가상의 역사를 배경으로 정치 상황이 혼돈에 빠져든 일본에서 특기대, 즉 특수기동대 케르베로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표면상으로는 권력을 위해 특기대를 해체하려는 무리들과 이에 맞선 특기대의 비밀 조직 인랑, 즉 인간늑대들의 싸움을 그리고 있지만, 본질은 빨간 늑대 동화를 모티브로 한 사랑이야기다. 특히 주인공들이 느끼는 그 사랑은 뼈 속 깊은 외로움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를 오시이 마모루 원작자와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은..

에반게리온 파 2.22 (블루레이)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수 많은 TV 시리즈와 극장물로 수도 없이 되풀이된 작품이다. 그래서 신 극장판 3부작은 개봉 전부터 호기심과 더불어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다. 3부작의 시작인 '에반게리온 서'가 기존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라면 두 번째 작품인 '에반게리온 파'(2009년)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구의 수호신을 자처한 에바가 떼거지로 등장해 무지막지한 위력을 보여주는 사도와 맞서 혈투를 벌인다. 그 속에서 에바를 조종하는 소년과 소녀는 실존에 대한 의문과 복잡하게 얽힌 감정선을 드러내며 고민한다. 이 작품이 특이한 것은 처절한 전쟁 영화 같은 로봇들의 전투 장면이다. 관절에서 피를 내뿜고 로봇과 인간이 한 몸이 돼서 느끼는 고통은 이 작품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