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전도연 12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블루레이)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2003년)는 눈이 즐거운 영화다. 내용이 야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18세기 조선시대 풍속을 재현한 의상과 음식, 풍경 등 갖가지 볼거리가 화사한 색감으로 수놓듯 펼쳐진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실제 고증을 거쳤고, 현재 제일모직 전무로 있는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씨의 도움을 받았다. 정구호씨는 미술감독으로 참여해 '구호' 브랜드에서 보여준 패션감각을 배우들의 의상과 각종 소품 등에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이 작품은 색이 곱다. 배우들이 입고 나온 파스텔톤의 의상부터 진한 원색까지 손대면 그대로 묻어날 듯 색이 선명하다. DVD 타이틀에서는 극장에서 본 색이 제대로 살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블루레이는 근접한 느낌이다. 영화의 기본 내용은 조선시대 바람둥이 양반..

멋진 하루 (블루레이)

돈이란 사람을 비루하게 만든다. 특히 채무로 얽힌 인간 관계는 참 피곤하다. 여기에 채무 관계가 헤어진 연인사이라면, 생각하기 싫을 만큼 답답하고 한심스러워 진다.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2008년)는 제목과 달리 바로 그 불편한 인간 관계에 카메라를 들이 댔다. 옛 남자(하정우)가 꿔간 돈 350만 원을 받기 위해 나타난 여자(전도연)는 남자와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며 채권 수금에 나선다. 수중에 돈이 없는 남자는 또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몇 십만 원씩 다시 꿔서 여자의 돈을 갚는다. 그 과정이 지난하고 신산스럽다. 그러면서도 남자가 한심스럽고 얄밉지만 밉지 않다.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남자의 모습 속에 따스한 진정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자를 사기꾼이 아닐까 의심했던 마음은, 극..

돈의 맛

임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언제나 욕망에 천착한다. '하녀'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처녀들의 저녁식사' 등 그의 작품들은 항상 돈과 섹스, 권력 등 가장 구질구질한 욕망을 직시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메스를 들이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직설적인 화법은 특별한 쾌감을 선사하며 화제를 뿌린다. 그러나 잘못 들이댄 메스는 오히려 고통만 키운다. '돈의 맛'은 그런 작품이다. 잘못 스친 칼날이 사방 가득 역겨운 피비린내만 풍겼다. 남성판 '하녀', 아니 '하인'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재벌가에서 온갖 궂은 일을 처리하는 집사 같은 청년이 보게되는 잘못된 부자의 삶을 다뤘다. 하지만 최상위 1%의 모습을 다뤘다고 하기엔 너무 피상적이다. 부도덕한 성관계, 권력층..

영화 2012.05.20

하녀 (블루레이)

고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 '하녀'를 리메이크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2010년)는 남과 북의 대치만큼이나 갈등의 골이 깊은 인물들 간의 대립을 보여준다. 그러나 원작처럼 생존의 문제로 빚어진 갈등이 아니라 가진자와 못가진 자의 욕정과 애증이 얽힌 감정의 대립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제목과 설정만 같을 뿐 리메이크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내용이 다르다. 임 감독은 부자와 빈자의 계급적 대립을 다루고 싶었단다. 그러나 1970년대나 80년대와 달리 계급적 갈등구조가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는 요즘 한국사회에서 계급적 대립을 다루려면 설득력 있는 정교한 이야기전개가 필요하다. 단순히 돈이 많은 부자와 그 집에서 식모살이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적 계급적 갈등이 극적으로 표출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보니..

임상수 감독의 '하녀'

고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품 '하녀'는 영화 애호가들이 명작으로 꼽는 영화다. 특히 작가주의 감독들 사이에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절대적이다. 그런 만큼 리메이크를 할 경우 철저한 연구와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임상수 감독의 '하녀'(2010년)는 원작에 대한 부담이 컸던지, 이상하게 뒤바꾼 설정 때문에 연구와 고민의 흔적이 묻혀 버렸다. 우선 임 감독은 원작에서 벌어지는 생존의 문제들을 욕정의 싸움으로 바꿔 놓았다. 다같이 배고팠던 60년대에 여공이나 하녀라는 직업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원작의 어린 여성들도 밥을 먹기 위해 여공이나 하녀가 됐고, 그렇다보니 갇힌 세상 안에서 순수한 사랑에 눈을 뜬다. 60년대 여성들의 사랑은 한 번 바친 순정이 곧 목숨이었다. 그래서 돈의 문제를 떠나 첫 ..

영화 2010.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