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전미선 6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1990년)는 전작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예상외로 크게 성공하자 제작사인 황기성 사단에서 서둘러 만든 속편이다. 전작의 인기를 업고 가기 위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두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감독은 전작의 각본을 쓴 김성홍이 맡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미연, 김보성이 주연을 맡았고 지금은 유명한 배우들이 된 공형진, 이범수, 최진영 등이 신인으로 출연했다. 음악도 전작처럼 산울림의 김창완이 맡아 주제가를 불렀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전작만큼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서울의 경우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5만3,000명의 관객이 들었다. 전작이 16만 명이 관람해 대박을 쳤으니 그에 비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당시 10만 명 관람이 ..

숨바꼭질

허정 감독의 영화 '숨바꼭질'은 어떠한 단서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보는 게 좋다. 작은 힌트나 이야기 조차도 이 영화에서는 커다란 공명을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영화는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픽션이다. SBS의 '궁금한 이야기 Y'에서 방영된 '도둑 암호의 미스터리'편에서 감독이 힌트를 얻어 남의 집에 몰래 숨어사는 사람이라는 기발한 내용의 시나리오를 썼다. 물론 이 같은 소재가 영화에서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다. 김기덕 감독의 '빈 집'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아예 주인의 등 뒤에서 밥까지 먹는 대담한 행동을 한다. 그만큼 소재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구성해 끝까지 보게 만든다. 영화는 스릴러의 공포물의 형식을 적당히..

영화 2013.09.08

8월의 크리스마스 (블루레이)

이르고 늦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죽음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명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알고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는 죽음을 기다리는 한 남자의 평온한 일상을 그렸다. 그의 일상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옛 추억을 그리워하며 아련한 사랑을 한다. 다만 죽음이 예정돼 있다는 것만 다를 뿐. 그래서 그의 일상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마루에 앉아서 발톱을 깎고, 가족과 수박을 먹으며 마당에 씨를 뱉어내고 연인과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는 평범하고 소소한 우리네 일상이 한없는 무게감으로 다가 온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을 이토록 큰 의미 부여와 함께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마더 (블루레이)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년)는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남의 자식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을 마다않는 무서운 모정을 다루고 있다. 엄마가 내뱉는 "우리 아들 발톱의 때만도 못한 새끼가"라는 한 마디의 대사가 이를 함축하고 있다. 바보 취급을 받는 아들(원빈)이 어느날 살인사건 용의자로 경찰에 잡혀가면서 엄마(김혜자)의 고난은 시작된다. 아무도 아들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엄마는 아들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한다. 공포 영화의 거장 웨스 크레이븐 감독은 "선악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다"라는 말을 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 속의 섬뜩한 모정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선과 악이 버무려져 있다. 이를 미스테리 소설처럼 재미있으면서 긴장감 넘치게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김혜자의 뛰..

살인의 추억 (블루레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년)은 우리 영화 중에서 걸작을 몇 편 꼽으라면 꼭 들어갈 작품이다. 탄탄한 내용과 연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훌륭한 영상, 애잔한 음악까지 이토록 완벽한 작품이 있을까 싶다. 김광림의 연극 '날 보러와요'를 각색한 이 작품은 그 해 500만명을 넘기며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 내용은 1986년부터 91년까지 경기 화성에서 6년간 10명의 부녀자가 죽은 연쇄강간살인사건을 다뤘다. '화성 연쇄 살인'으로 통하는 이 사건은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하고 공소 시효를 넘겨 영구 미제 사건이 됐다. 봉 감독은 안개 속처럼 뿌연 사건의 한 가운데서 범인을 쫓는 형사들의 안타까운 심정에 초점을 맞춰 숨막히는 드라마로 그려 냈다. 어찌나 심리 묘사가 탁월한 지 절로 형사들의 심정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