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정정훈 8

라스트 나잇 인 소호(4K)

에드거 라이트(Edgar Wright) 감독이 만든 '라스트 나잇 인 소호'(Last Night in Soho, 2021년)는 1960년대 문화와 독창적인 스릴러가 절묘하게 결합된 뛰어난 영화다. 악몽을 통해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기괴하면서도 환상적인 이야기를 절묘한 구성과 놀라운 영상으로 펼쳐 놓았다. 내용은 가수의 꿈을 안고 런던 소호 거리에 왔다가 원치 않는 비극적 삶을 살게 된 여인에 얽힌 살인사건을 다뤘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소호에 온 앨리(토마신 맥켄지 Thomasin McKenzie)는 밤마다 꿈속에서 1965년 가수를 꿈꾼 샌디(안야 테일러 조이 Anya Taylor-Joy)를 만난다. 앨리는 꿈속에서 샌디의 삶을 살면서 그가 일했던 카페 드 파리와 리알토 극장의 무서운 비밀을 ..

커런트 워(블루레이)

알폰소 고메즈 레존(Alfonso Gomez-Rejon) 감독의 '커런트 워'(The Current War, 2017년)는 과학영화가 지루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깬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인류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한 전기 전쟁을 다루고 있다. 위대한 천재로 꼽히는 토마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과 그에 맞서는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가 미국이 채택할 전기 공급 방식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내용이다. 에디슨(베네딕트 컴버배치 Benedict Cumberbatch)은 직류 방식을, 웨스팅하우스(마이클 새넌 Michael Shannon)는 교류 방식을 각각 밀고 있었다. 레존 감독은 이 과정을 마치 무림고수의 대결처럼 두 사람의 싸움으로 묘사해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박흥용의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호방한 화풍과 귀신같은 칼솜씨를 지닌 맹인 검객의 독특한 이야기가 빛을 발하는 명작이다. 그림이 시원 시원하고, 정사 장면을 기왓장이 쏟아져 내리는 풍경으로 표현하는 등 탁월한 은유가 빛나는 작가주의 정신으로 충만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를 원작으로 한 이준익 감독의 동명 영화(2010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감독은 원작 만화에서 시골 진사의 서자로 나오는 주인공 견주를 명문 세도가의 서자로 설정해 당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밀어넣으며 시대극으로 만들었다. 신경질적인 왕을 통해 당파 싸움만 일삼는 조정을 비꼬는 장면들을 보면 '왕의 남자'나 '황산벌'처럼 권세가들을 조롱하는 이 감독 특유의 비판 정신은 살아 있다. 하지만 풍자와 해학 속에 뼈있는 메시지를 ..

신세계 (블루레이)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2012년)는 깔끔한 영화다. 장르에 충실한 느와르 영화답게 군더더기 하나 없이 비정한 사나이들의 혈투를 피비린내 가득한 영상으로 묘사했다. 내용은 스파이를 통해 범죄 조직을 장악하려는 경찰과 이에 맞선 조직 폭력배들의 이야기다. 신분을 숨긴 채 잠입한 경찰 스파이라는 설정만 놓고 보면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홍콩 영화 '무간도' 시리즈를 비롯해 할리우드 영화들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소재가 계속 되풀이 되는 이유는 스파이물 특유의 긴장과 두뇌 플레이가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 내부 스파이를 색출하려는 조폭들과 경찰들의 숨막히는 암투가 빚어내는 긴장감이 일품이다. 그만큼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 등 화제작 작가 출신 답게 박..

스토커 (블루레이)

박찬욱 감독이 미국 폭스서치라이트 의뢰로 해외에서 처음 만든 '스토커'(Stoker, 2013년)는 관계에서 오는 긴장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숨겨진 미묘한 관계를 갖고 있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인은 시동생과 은밀한 접촉을 하며, 시동생은 조카 딸과 야릇한 감정을 나눈다. 이토록 복잡 미묘한 세 사람이 한 집에 살면서 빚어내는 긴장과 갈등이 영화의 큰 축을 이룬다. 박 감독은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물 흐르듯 은밀하게 움직이는 카메라와 깔끔한 편집으로 풀어냈다. 카메라는 '박쥐'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 등 박 감독의 전작을 찍은 정정훈 촬영 감독이 잡았다. 그만큼 박 감독과 호흡이 잘 맞아 이번 작품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을 선보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