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조재현 7

역린(블루레이)

정유년인 1777년 7월 28일 벌어진 정유역변은 참으로 드라마틱한 사건이다. 왕정국가인 조선에서 절대 권력인 왕을 신하들이 암살하려다 실패해 몰살당했다. 사건의 발단은 주모자로 알려진 홍상범의 아버지인 황해도 관찰사 홍술해가 관의 재산을 부당하게 빼돌렸다가 흑산도로 귀향 가면서 시작됐다. 요즘으로 치면 횡령을 한 셈이다. ◇조선시대 최초의 왕의 호위군관이 가담한 역모사건 아들 홍상범은 아버지가 억울하게 누명을 섰다고 생각해 노론 벽파와 손잡고 정조를 죽인 뒤 서자인 은전군 이찬을 추대하려는 역모를 꾸민다. 그는 왕의 호위군관 강용휘를 포섭해 궁으로 들어갈 길을 텄다. 강용휘는 궁인이었던 딸 강월혜와 조카인 궁중별감 강계창, 천민 출신 장사꾼 전흥문을 끌어들여 암살 사건을 준비한다. 강용휘와 전흥문은 강..

수취인불명 (블루레이)

'수취인불명'(2001년)은 김기덕 감독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빈 집' '섬' '악어' '나쁜 남자' 등 김감독의 다른 작품들이 개인의 내면 세계를 깊게 파고든 반면 '수취인불명'은 분단국가의 일그러진 사회상을 개인의 삶에 투영했다. 그 바람에 영화는 다른 작품들보다 무겁고 우울하며 온통 회색빛이다. 제목인 수취인불명은 흑인 혼혈인 창국(양동근)의 엄마(방은진)가 창국 아버지인 미군에게 날마다 편지를 보내지만 늘 수취인불명으로 돌아오는데서 유래했다. 아울러 어느 쪽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떠도는 불안한 등장인물들의 삶을 암시하기도 한다. 혼혈인 창국, 한쪽 눈을 다친 은옥, 주한 미군으로 파견됐으나 왜 미국도 아닌 남의 땅을 지키기 위해 훈련을 하는 지 의문을 느끼는 제임스 ..

나쁜 남자 (블루레이)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2001년)는 '섬' 이후 가장 충격적이며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다. 영상이나 내용이 주는 충격은 여성의 자해 장면이 너무나 끔찍했던 '섬'이 더 강했지만 좋아하는 여인을 파멸로 몰아 넣어 소유하려는 극단적인 사랑이라는 구성이 '섬' 못지 않게 충격적이고 자극적이었다. 이 작품이 대중적으로 성공한 것은 사실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다른 곳에 있었다. 영화 개봉 전 TV 드라마 '피아노'가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 주인공이었던 조재현이 이 작품에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TV 드라마에서 인기를 끈 스타 배우의 후광을 톡톡히 본 셈이다. 하지만 그를 걷어내더라도 이 작품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다. 나름 김 감독의 주제 의식이 명확하게 표현됐고 파격적인 소재..

섬 (블루레이)

김기덕 감독의 네 번째 영화 '섬'(2000년)이 DVD로 국내 출시된 것은 2004년이다. 미국보다 1년 늦게 출시됐는데, 그때까지 나온 김기덕 영화 중에 '섬'과 '나쁜 남자'를 가장 좋아한다. 이 작품은 그때까지 가학, 잔혹 영상으로 대표되는 김감독 작품답지 않게 영상이 아름다워 눈길을 끌었다. 이전 작품들도 그림을 그렸던 김 감독의 특성을 십분 살려 회화적 느낌을 강조하긴 했지만 서정적이거나 아름다운 영상은 이 작품이 한 수 위다. 이전 작품들에서 그가 승부를 걸었던 것은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와 배우들의 강한 연기였다. 아무래도 제작비의 한계상 영상에 공을 들이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르다. 고즈넉히 안개가 깔린 거대한 저수지 위로 낚시집들이 떠 있는 풍경은..

악어

1996년, 우연히 비디오가게에서 독특한 표지에 끌려 집어든 비디오 테이프 '악어'(1996년)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신선하면서도 놀라운 이야기, 특이한 영상과 캐릭터를 보여준 그 작품은 김기덕이라는 감독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우선 김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가 시선을 끈 것은 머구리라는 독특한 소재였다. 머구리란, 잠수부를 뜻하는 옛말이다. 단순히 물 속에 들어가 일하는 잠수부가 아니라 물 밑바닥까지 내려가 난파선 인양이나 시신을 건져내는 궂은 일을 한다. 김 감독이 '악어'에서 그린 머구리는 그 중에서도 시체 인양을 전문으로 한다. 한강다리에서 투신한 사람들의 시신을 뒤져 금품을 가로채거나 유족들에게 돈을 받고 시신을 건져 올린다. 그야말로 험하디 험한 삶을 사는 주인공 앞에 한 여인이 투신하며 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