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주현 3

해피엔드 (블루레이)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1999년)가 개봉한 지 벌써 17년이 지났다. 앳된 소녀 같은 얼굴의 전도연과 젊은 청년의 모습이 역력한 최민식, CCTV도 보이지 않고 휴대폰 조차 흔치 않아 유선전화를 이용해 밀회를 나누는 장면 등에서 지나간 세월의 깊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인 이 작품은 불륜이라는 만만찮은 주제를 다뤘다.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남편이 절망과 분노 끝에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다. 통속극에서 다루는 흔한 소재이고 배반당한 사람의 복수라는 상투적인 흐름으로 이어지지만 결말을 알면서도 과정 자체가 궁금해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이야기를 농밀하게 풀어내고 장면들을 짜임새 있게 엮어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여기에 IMF 이후 실직한 가장들의 불안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민규동 감독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년)을 보면 요즘 한국영화를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쌍의 각기 다른 사랑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구성이 '러브 액츄얼리'와 흡사해 감점 요인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사랑, 즉 사람들의 애환이 적절히 녹아든 생활 이야기로 '러브 액츄얼리'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특히 형식상 많은 인물과 여러 이야기가 섞이다 보면 혼선을 빚을 법도 한데 연결고리에 신경을 써서 적절한 편집으로 이야기를 잘 정리했다. 영화를 보면 민 감독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시선이 따뜻한 인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전작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품 역시 소외받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는다. 현재의 삶이..

가족

이정철 감독의 데뷰작 '가족'(2004년)이 지난해 히트작 중 하나라는 게 이해가 안 간다. 추석 때 개봉한 이 작품은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들며 흥행에 성공했고, 수애에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까지 안겨줬다. 주된 내용은 부녀 간의 갈등 때문에 삐뚤어지게 자란 딸이 감옥을 다녀온 뒤 아버지(주현)의 사랑을 점차 깨닫는다는 것. 도식적이고 뻔한 줄거리에 이렇다 할 에피소드도 없고 더할 수 없이 심심한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추석이라는 시점과 대박 경쟁작이 없었던 것이 흥행의 요인이 아닌가 싶다.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라기보다 TV 단막극으로 소화할 만한 작품이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평범한 그저 그렇다. 내용이 그렇듯 영상에도 이렇다 할 임팩트 요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