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중국 23

촉산

'촉산'(蜀山, 1983년)은 서극 감독의 '디 워' 같은 영화다. 흔히 홍콩의 스필버그로 불리는 그는 항상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화를 꿈꿨다. 중국 영화 전통의 사극이나 무협 장르를 살리면서 여기에 할리우드처럼 특수효과를 가미해 대작 영화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만큼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서 여러 가지를 시도했으나 불운하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서극 감독에게 좌절을 안긴 실패작이지만 그에게 전환점이 된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서극은 이 작품이 흥행에서 실패한 뒤 더 이상 기존 영화사에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 힘들 것으로 보고 전영공작소라는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원하는 영화를 마음껏 만들기 위해 설립한 이 곳에서 그는 오우삼, 정소동 같은 감독들을 발굴해 홍콩 누아르 시대가..

홍등(블루레이)

'붉은 수수밭' '국두' 등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초기작은 여성의 삶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특히 중국의 오랜 전통처럼 굳어진 유교 사상과 봉건제적인 삶에 뿌리 깊이 사로잡혀 남자에게 종속된 여성의 비극적인 삶을 주로 다뤘다. 이를 통해 과거의 잘못된 전통과 단절하고 주체적이고 평등한 인격적 존재로 바로 서는 여성을 강조한다. 그것이 비단 중국이 요구하는 생산주체이자 혁명주체인 사회주의적 여성상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전 세계적 추세인 양성 평등의 보편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축첩제도를 다룬 영화 '홍등'(大紅燈籠高高掛 1991년)도 마찬가지다. 장이머우 감독이 이 작품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중국의 봉건제적 전통인 축첩 제도다. 주인공인 송련(공리)은 대학을 중퇴..

붉은 수수밭(블루레이)

중국판 '분노의 포도'라고 할 수 있는 '붉은 수수밭'(紅高梁, 1988년)은 장이머우(장예모)라는 걸출한 중국 감독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그는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로 중국 제5세대 감독의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 모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다분히 민족적이며 사회주의적이다. 돈 때문에 양조장을 운영하는 쉰 살 넘은 노총각이자 나병 환자에게 팔려간 젊은 여성(공리)의 이야기다. 시집갈 때까지만 해도 여성은 다분히 일부종사(一夫從事)의 틀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남편의 죽음으로 술도가를 맡게 되면서 여성은 여장부로 변신한다. 남정네들을 이끌고 술도가를 일으키며 급기야 항일 무장투쟁에 나서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여인은 더 이상 봉건적 잔재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와호장룡(4K 블루레이)

호랑이는 발톱을 감춘 채 숲에 누웠고, 여의주를 품은 용은 구름 속에 몸을 숨겼다. 그렇게 누운 호랑이(臥虎)와 숨은 룡(藏龍)이 만나 벌인 싸움은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이안 감독의 수작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2000년)은 참으로 아름다운 무술영화다. 원작은 왕두루의 동명 소설. 내용은 강호에 은거한 무술 고수와 속세에 잠복한 여걸의 싸움을 다룬 무협물이다. 그러나 단순 칼부림에 그치는 무협물이 아니라 남녀 간의 애닲은 사랑이 수놓인 드라마다. 특히 이안 감독 특유의 심미안이 액션에도 그대로 녹아나 주윤발과 장쯔이, 양자경이 허공을 가르며 벌이는 대결은 마치 한 편의 무용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여기에 장엄하면서도 서정적인 탄둔의 음악이 물흐르듯 깔리..

그레이트 월(블루레이)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그레이트 월'(The Great Wall, 2016년)은 중국 문화에 대한 우월성과 자만심이 가득한 판타지 영화다. 혹독하게 말하면 서양인들을 겨냥한 중국 우월주의를 알리는 프로파간다에 가깝다. 내용은 신비의 검은 가루를 찾아서 중국으로 흘러든 두 명의 서양 전사가 만리장성을 지키는 중군 군대와 함께 괴수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타오티에라고 부르는 괴수들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도철(饕餮)이다. 탐할 도(饕)에 탐할 철(餮)이라는 글자처럼 끝없는 욕심의 상징인 이 괴수는 용의 아홉 자식 중 하나다. 거대한 소의 몸에 호랑이 이빨과 양의 뿔을 지닌 이 괴수는 무시무시한 괴력과 파괴의 화신으로 꼽힌다. 영화 속에서는 이 괴수들이 떼거지로 달려들어 사람을 잡아먹는다. 원래 이민족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