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토니 스콧 5

더 그레이(블루레이)

조 카나한 감독의 '더 그레이'(The Grey, 2012년)는 자연이 주는 공포, 특히 야생의 공포를 생생하게 잘 다룬 재난 영화다. 무엇보다 극한의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적이 주는 공포와 숨통을 조이는 듯한 긴장감이 일품이다. 내용은 눈폭풍을 만나 설원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7명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야기다. 영하 수십 도로 떨어지는 혹한도 끔찍한데 이들의 뒤를 굶주린 늑대 무리까지 따른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늑대들은 우두머리의 지휘에 따라 살아남은 사람들은 한 사람씩 차례로 사냥한다. 남은 사람들은 필사의 몸부림으로 달아나지만 엄청난 추위와 인적 없는 숲 등 자연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이 영화가 뛰어난 것은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공포를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잘 묘사한 점이다..

스토커 (블루레이)

박찬욱 감독이 미국 폭스서치라이트 의뢰로 해외에서 처음 만든 '스토커'(Stoker, 2013년)는 관계에서 오는 긴장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숨겨진 미묘한 관계를 갖고 있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인은 시동생과 은밀한 접촉을 하며, 시동생은 조카 딸과 야릇한 감정을 나눈다. 이토록 복잡 미묘한 세 사람이 한 집에 살면서 빚어내는 긴장과 갈등이 영화의 큰 축을 이룬다. 박 감독은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물 흐르듯 은밀하게 움직이는 카메라와 깔끔한 편집으로 풀어냈다. 카메라는 '박쥐'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 등 박 감독의 전작을 찍은 정정훈 촬영 감독이 잡았다. 그만큼 박 감독과 호흡이 잘 맞아 이번 작품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을 선보였..

데자뷰

심령극을 연상시키는 제목 때문에 착각할 수 있지만 토니 스콧 감독의 '데자뷰'(Dejavu, 2006년)는 SF에 가깝다. 시간을 되돌려 사건을 해결한다는 공상에 과학적 이론인 양자물리학을 갖다 붙였다. 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수사관들이 선택한 방법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시간을 되돌려 탐색을 하다가 급기야 주인공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신의 영역인지 과학의 영역인 지 확신할 수 없지만 이쯤되면 사실상 데우스 엑스 마키나이다. 즉, 이야기가 풀리지 않을 때 느닷없이 신이 나타나 모든 것을 깔끔하게 해결해 주는 고대 그리스의 연극 장치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영화에서는 반칙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현실에 기반한 액션..

서브웨이 하이재킹 펄햄123

비행기, 여객선, 기차에 이어 이번에는 지하철이 납치의 대상이 됐다. 토니 스콧 감독의 '서브웨이 하이재킹 펄햄123'은 제목이 말해주듯 펄햄123호 지하철을 납치하는 내용이다. 뉴욕 경찰, 지하철 회사 직원들이 돈을 노린 범인들과 피말리는 인질극을 벌인다. 모든 납치극이 그렇듯, 인질의 무사 귀환까지는 숨막히는 긴장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 이 작품도 그렇다. 그러나 문제는 인질들이 풀려난 뒷이야기가 맥없이 풀어진다는 점. 너무나 허망하게 스러지는 범인들을 보며 1시간 40분의 상영 시간이 아주 아까웠다. 그렇다고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탑건' '맨 온 파이어' '크림슨 타이드' 등 재미있는 작품을 만든 토니 스콧 감독인 만큼 기대가 컸으나 이 작품은 명성에 못미쳐 실망스럽다. GPS화면..

크림슨 타이드 (블루레이)

잠수함을 소재로 다룬 영화들은 공통점이 있다. 어디로 도망칠 곳 없는 폐쇄 공간에서 벌어지는 숨막히는 긴장감을 다룬다는 것. 토니 스콧 감독의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 1995년)도 예외가 아니다. 러시아 내전 때문에 출동한 미 핵잠수함에서 핵 미사일 발사를 두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내용이다.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에 초점을 맞춘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적의 제압을 최우선으로 두는 함장과 최대한 전쟁 발발 상황을 피하려는 부함장 간의 불꽃튀는 심리전이다. 이를 진 핵크만, 덴젤 워싱턴이라는 걸출한 두 배우가 뛰어난 연기로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덕분에 요란한 전투 장면 없이도 상영 시간 내내 눈을 떼지 못하게 된다. 그만큼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