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강풀 4

26년

조근현 감독의 '26년'은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유족들이 모여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단죄하는 내용의 영화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실제 역사와 상상을 어떻게 버무렸을 지 궁금했는데, 기대 이하로 실망스럽다. 강풀의 원작 만화를 보지 못해서 영화 내용이 원작에 얼마나 충실한 지 알 수 없지만 영화의 내용은 너무 치졸하다. 제작진의 역사 인식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주인공들의 단죄는 개인의 분노와 복수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초반 5.18 항쟁 당시 개개인의 과거 사연을 만화로 처리해 현재 시점의 실사와 차별한 시도는 좋았지만 이후 이야기의 진행은 너무 답답하고 맥이 빠지게 흘러간다. 왜 그리 등장인물들의 사설은 길고 구구절절한 지 일장 연설을 듣는 것 같고, 막상 복수에 나선 행동은 마치 골..

영화 2012.11.30

이웃사람

배우나 감독보다 원작자의 영향이 더 큰 사람이 만화가 강풀이다. 그의 작품이 워낙 웹툰으로 유명하기 때문. 김휘 감독의 '이웃사람'도 마찬가지. 웹툰으로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어느 마을의 여중생이 살해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묻지마 살인과 연쇄살인의 코드가 적절히 섞이면서 여기에 이웃들의 무관심이라는 메시지가 덤으로 얹혔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큼 흥미진진한 소재가 듬뿍 얹힌 이야기는 궁금증을 유발하며 눈길을 붙잡는다. 기본적인 줄거리 외에 인물들도 개개의 사연을 지닌채 살아 있다. 왜 누구는 이웃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누구는 애써 외면하는 지 스토리를 통해 사연들이 풀려 나오면서 영화는 때로는 공포물, 때로는 스릴러의 장르를 오간다. 배우들도 연기도 좋았다. 악..

영화 2012.08.26

바보

김정권 감독의 '바보'(2008년)는 강풀이 그린 같은 제목의 만화가 원작이다. 토스트 장사를 하며 혼자서 동생을 키우는 승룡(차태현)은 발달 장애로 사람들에게 바보 소리를 듣지만 마음만큼은 더 없이 순수하다. 그래서 갖가지 고민과 삶의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하는 지호(하지원)와 상수(박희순) 등 주변 친구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된다. 영화가 보여주는 사람들의 삶은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모습이다. 반대로 순수한 모습을 지닌 채 변함없는 삶을 사는 승룡은 사람들의 이상이요, 꿈이다. 영화는 두 가지 대척점에 서서 거울처럼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을 담백하게 그렸다. 특히 영화는 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과거의 흔적들이 묻어있는 풍경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정서를 만든..

아파트

'폰'으로 주목을 받은 안병기 감독도 이제 소재가 다떨어진 것 같다. 심지어 장면을 구성하는 아이디어와 공포물에 대한 영상감각 마저 떨어진게 아닌가 싶다. 그가 만든 '아파트'(2006년)는 만화가 강풀의 인기 원작 만화를 각색했는데도 불구하고 원작의 재미와 참신함을 제대로 못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느 중산층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장면들도 여러 부분이 다른 공포물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바람에 여지없이 귀신이 등장하고 보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의미없이 요란한 음향이 추가됐는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전혀 무섭지 않다. 워낙 충격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사회에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어지간한 자극에 둔감한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 부족한 스토리나 이해할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