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곤 사토시 4

메모리즈 (블루레이)

저패니메이션 '메모리즈'(Memories, 1995년)가 블루레이 타이틀로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극장 개봉도 10여년이 지난 지난해 11월에 뒤늦게 했고, DVD 조차 아예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블루레이 타이틀로 나오다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갑다. 특별히 이 작품이 더 반가운 이유는 오래전 봤던 조잡한 비디오 테이프 때문이다.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이어서 국내서 이 작품을 구하기 힘들었던 1990년대 후반, 일본 애니메이션을 아주 좋아했던 친구가 복사해 준 비디오테이프에 이 작품이 들어 있었다. 일본 LD를 카피한 것으로 알려진 복제 비디오테이프는 화질이 매우 열악했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재미있는 소재와 그림, 음악이 어우러져 새로운 신세계를 열어준 느낌이었다. 그동안 좋..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곤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가 묻어 있다. 비록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꿈꾸며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느 늙은 여배우의 삶을 관통한 '천년여우', 꿈과 현실이 모호하게 교차하는 '파프리카' 등 기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 그렇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Tokyo Godfather, 2003년)도 마찬가지다. 세 명의 노숙자가 쓰레기 더미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기를 부모에게 갖다주기 위해 벌이는 소동이 주 내용이다. 꿈과 현실이 교차하고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과거 작품들과 달리 이번 작품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현대인이 굳건히 발을 디디고 선 도쿄 한 복판을 무대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홈리스들..

파프리카

곤 사토시 감독이 츠츠이 야스타카의 신비로운 원작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파프리카'(Paprika, 2006년)는 과학에 밀려 시들어가는 꿈에 대한 이야기다. 정신치료 전문의인 치바 아츠코는 신비한 기계를 이용해 사람들의 꿈 속에 들어가 그들의 고민과 문제점을 해결해 준다. 사람들의 꿈 속에 들어갈 때에는 또다른 자아인 파프리카로 변신한다. 그러나 꿈 속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장치가 도난당하면서 파프리카는 위기에 빠진다. 이때부터 파프리카와 음모의 세력이 신비로운 싸움을 벌인다. 작품 속 과학과 꿈은 결국 현실과 이상에 대한 대치다.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사라져가는 꿈에 대한 아쉬움을 파프리카라는 독특한 존재를 빌려 표현한 이 작품은 판타지와 SF의 경계선상에 놓인 오묘한 작품이다. 내용은 어렵고 난..

천년여우

천년 묵은 여우가 아니다. 천년의 사랑을 하는 여배우라는 뜻. 요상한 제목의 '천년여우'(千年女優, 2001년)는 '퍼펙트 블루'로 유명한 일본의 곤 사토시(こんさとし)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의 숨겨진 사랑 이야기를 쫓는 다큐멘터리 같은 이야기. 자극적인 '퍼펙트 블루'와 달리 순수한 사랑에 대한 믿음이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펼쳐진다. '퍼펙트 블루'처럼 인물들은 선이 생략됐으면서도 부드럽다. 대체로 동글동글한 만화적인 캐릭터들. 그렇지만 배경이나 소품 등을 보면 얼마나 정교하게 공을 들였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왜색이 짙지만 내용을 떠나 그림 만으로도 간직할 만한 작품. 최근 나온 DVD 타이틀은 16 대 9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의 시원스러운 영상을 보여준다. 화질은 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