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구로자와 아키라 6

7인의 사무라이(블루레이)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하면 우선 떠오르는 작품이 바로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 1954년)다. 이 작품은 그를 국제적으로 알린 첫 작품이면서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전란으로 피폐해진 일본 전국시대에 툭하면 산적에게 시달리는 농촌 사람들이 7명의 사무라이를 고용해 산적들을 막는 내용이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잘 살아 있고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과 싸움 장면을 긴장감 넘치게 묘사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만든다. 특히 산적을 유인해 덫에 가두듯 마을에 하나씩 몰아넣고 때려잡다가 빗속에서 최후의 결전을 치르기까지 긴장감을 점차 높여 나가는 연출 솜씨가 일품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변하는 것과 변하..

이키루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키루'(1952년)는 아버지의 모자에 대한 이야기다. 도쿄시청 공무원인 주인공은 평생 써 온 모자처럼 30년 공무원 생활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 가지 일만 되풀이 해왔다. 무사안일로 타 부서에 일을 떠넘기고 자리 보전에만 급급한 자세로 살았던 그가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위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시한부 6개월. 그제사 주인공은 이렇다 한 일 없이 보낸 자신의 30년 인생이 덧없음을 깨닫는다.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낼까. 메피스토펠레스의 꾐에 빠진 파우스트처럼 평소 해보지 못한 유흥에 빠져 보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러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일에서 보람을 찾는다는 말단 여직원의 말에 불현듯 깨닫는다. 그때부터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은 가난한 동네 사람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

카게무샤 (블루레이)

사무라이들이 판을 치던 일본 전국시대에는 영주의 신변을 보호하고자 그를 대신할 가짜 영주를 내세웠다. 그가 바로 그림자 무사, 즉 카게무샤(影武者)이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1980년에 만든 '카게무샤'(Kagemusha)는 다케다 신겐의 그림자 무사 이야기다.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전국 통일을 놓고 다투던 3인중 하나인 신겐은 천하무적의 기마대를 거느린 가장 강력한 영주였으나 일찍 전사하는 바람에 통일의 꿈을 놓쳤다. 아키라 감독은 조지 루카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투자를 받아 신겐의 죽음을 영화로 제작, 제3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화려한 의상과 스펙타클한 전쟁 장면으로 눈길을 끌었으며, 무엇보다 아키라 감독의 영화 문법이 전편에 걸쳐 고스란히 투영돼..

주정뱅이 천사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주정뱅이 천사'(1948년)는 일본식 네오리얼리즘 영화다. 제 2 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에서 일었던 네오 리얼리즘 영화는 '자전거도둑'처럼 전후 이탈리아 사회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영화였다. 그런 점에서 프로파간다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사람들과 사회의 변화를 촉구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선동적이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 태평양전쟁 후 패전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이던 일본 사회가 처한 극도의 혼란을 두 사내를 중심으로 풀어 낸다. 누가 됐든 아픈 사람들을 고쳐야겠다는 알코올 중독자 의사와 암흑세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야쿠자의 애증을 통해 당시 일본 사회가 안고 있던 불안과 혼란을 보여준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어찌보면 일본 사회의 ..

라쇼몽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유명한 걸작 '라쇼몽'(1950년)은 처음부터 패를 드러내 놓고 시작한다. 폐허가 된 거대한 문(羅生門) 아래에서 요란하게 쏟아지는 비를 피하던 나무꾼이 내뱉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한마디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이다. 숲 속에서 발견된 사무라이의 시체. 시체를 발견한 나무꾼, 사무라이의 아내, 사무라이를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도둑, 여기에 무당의 입을 빌려 찾아온 사무라이의 영혼까지 네 사람은 같은 사건을 제각기 다르게 설명한다. 문제는 각기 다른 주장이 모두 그럴 법하다는 것. 결국 요란한 말속에 가려진 진실을 찾는 것은 관객의 몫이 된다. 하지만 네 사람의 주장 모두에 참과 거짓이 섞여 있다 보니 진실을 찾기란 결코 간단치 않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이 점 때문에 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