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김기영 6

김기영 감독의 원작 '하녀'(블루레이)

고 김기영 감독이 만든 '하녀'(1960년)는 50여년 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지금봐도 긴장감 넘치는 걸작 우리 영화다. 공장에서 여공들에게 합창을 지도하는 중년의 음악선생이 우발적으로 하녀와 육체적 관계를 가지면서 온 집 안에 죽음의 공포가 몰아치는 내용이다. 임상수 감독의 리메이크작 '하녀'와는 기본 설정이 같을 뿐 내용 전개방식이 많이 다르다. 2층 양옥집이라는 공간 안에서만 벌어지는 사건은 밀실 추리소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한 집 안에 공존하면 안되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목숨을 건 생존 싸움을 독특한 영상으로 절묘하게 묘사했다. 인물을 따라 앞뒤로 움직이며 공간의 깊이감을 부여하거나 수평으로 움직이며 긴장감을 부여하는 트랙킹 영상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뛰어나다. 특히 밥과 쥐약, ..

돈의 맛 (블루레이)

임상수 감독이 전작 '하녀'에 이어 '돈의 맛'(2012년)에서도 가진 자들의 부도덕함에 메스를 들이댔다. 이번에 겨냥한 상대도 역시 최상위 1%에 해당하는 부유층이다. 전작에서 전도연이 그들의 부도덕함을 낱낱이 살펴보는 고발자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하인 격인 김강우가 맡았다. 영화는 요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돈에 얽힌 병폐들을 집약했다.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죗값을 치르지 않기 위해 벌이는 권력층을 향한 뇌물공세와 문란한 성생활 및 마약,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도덕 불감증까지 총동원됐다. 뿐만 아니라 부유층과 바람난 가정부로 필리핀 여자를 선정해 점점 늘어나는 동남아 노동자들의 문제도 다뤘다. 이 모든 것을 임 감독은 돈 때문에 벌어지는, 돈의 맛에 취한 부작용으로 봤다. 그런데 욕심이 과했다..

화녀82

'화녀82'(1982년)는 우리 영화사의 기인이자 위대한 명장으로 꼽히는 고 김기영 감독이 자신의 대표작 '하녀'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1971년 '화녀'에 이어 두 번째로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원작보다 한층 더 무시무시해졌다. 이야기의 구성은 똑같다. 가정부로 올라온 시골 처녀가 주인집 남자에게 몸을 버린 후 온 가족에게 복수를 하는 이야기다. 단순 복수가 아니라 남자에 대한 집착이 무서운 증오로 변하는 과정을 애증의 변증법으로 다뤘다. 흑백으로 제작된 원작의 긴장과 섬뜩한 공포도 압권이지만, 다시 만든 이 작품 역시 또다른 긴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 김 감독은 다채로운 색을 사용해 등장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 상태를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했다. 다양하게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 파편과 김지미..

돈의 맛

임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언제나 욕망에 천착한다. '하녀'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처녀들의 저녁식사' 등 그의 작품들은 항상 돈과 섹스, 권력 등 가장 구질구질한 욕망을 직시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메스를 들이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직설적인 화법은 특별한 쾌감을 선사하며 화제를 뿌린다. 그러나 잘못 들이댄 메스는 오히려 고통만 키운다. '돈의 맛'은 그런 작품이다. 잘못 스친 칼날이 사방 가득 역겨운 피비린내만 풍겼다. 남성판 '하녀', 아니 '하인'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재벌가에서 온갖 궂은 일을 처리하는 집사 같은 청년이 보게되는 잘못된 부자의 삶을 다뤘다. 하지만 최상위 1%의 모습을 다뤘다고 하기엔 너무 피상적이다. 부도덕한 성관계, 권력층..

영화 2012.05.20

하녀 (블루레이)

고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 '하녀'를 리메이크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2010년)는 남과 북의 대치만큼이나 갈등의 골이 깊은 인물들 간의 대립을 보여준다. 그러나 원작처럼 생존의 문제로 빚어진 갈등이 아니라 가진자와 못가진 자의 욕정과 애증이 얽힌 감정의 대립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제목과 설정만 같을 뿐 리메이크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내용이 다르다. 임 감독은 부자와 빈자의 계급적 대립을 다루고 싶었단다. 그러나 1970년대나 80년대와 달리 계급적 갈등구조가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는 요즘 한국사회에서 계급적 대립을 다루려면 설득력 있는 정교한 이야기전개가 필요하다. 단순히 돈이 많은 부자와 그 집에서 식모살이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적 계급적 갈등이 극적으로 표출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