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김상호 8

목격자(블루레이)

신문방송학과 혹은 언론학부 교재에 오랫동안 언론보도의 영향력으로 소개된 유명한 사례가 있다. 바로 '방관자 효과'로 알려진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이다. 1964년 3월,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면에 살인사건 기사를 보도했다. 한밤중에 집에 가던 28세 여성 키티 제노비스가 윈스턴 모즐리라는 범인에게 살해당한 사건이었다. 911을 낳은 '방관자 효과' 보도 당시 NYT는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칼에 찔리는 35분 동안 주변 건물에서 38명이 목격하고도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고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충격적인 내용의 이 보도는 많은 사람들이 구경꾼처럼 서로 눈치만 보다가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방관자 효과라는 말을 낳았고, 급기야 미국 정부에서 긴급전화의 ..

해무 (블루레이)

2001년 9월 25일, 전남 여수시 봉산동의 한 다방에서 제7태창호 선장 이 모씨가 중개인 여 모씨를 만났다. 여 모씨는 밀입국 브로커였다. 즉 중국에서 한국으로 몰래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 밀항선을 연결해주고 돈을 받는 중개자였다. 여 씨는 이 선장에게 밀항자들을 실어오는 대가로 3,000만 원을 제안했다. 이 선장은 처음에 거절했으나 결국 여 씨의 제안을 수용했다. 선장은 선금으로 받은 돈 가운데 일부를 7명의 선원에게 100만원씩 나눠주고 29일 배를 띄웠다. ◇그 바다에서 무슨 일이... 제7태창호는 그때부터 10월 1일까지 5일간 갈치 등 생선 1,400상자를 잡으며 배를 기다렸다. 같은 기간 중국 저장성 닝보항에서 조선족 60여명을 태우고 접선 지점까지 향한 중국 측의 20톤급 중간 연락선이었..

범죄의 재구성 (블루레이)

악인들의 세계를 즐겨 다루는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2004년)은 범죄 3부작의 시작이다. 사기꾼이 나오는 이 작품으로 출발해 도박꾼이 나오는 '타짜', 도둑이 나오는 '도둑들'로 이어진다. 이 작품들을 보면 일종의 패턴이 있다. 여러 명의 스타가 우루루 나와 저마다 가진 개성과 특기로 팀웍을 이뤄 한 탕 사건을 벌이는 것. '이탈리안 잡'이나 '오션스 일레븐' 같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이다. 여기에 마치 김수현 드라마를 보듯 캐릭터들은 어찌 그리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대사를 쉼없이 내뱉는 지 할리우드 시트콤을 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영화는 지극히 이국적이다. 그 색다름이 그의 영화가 주는 재미이자 생경함이다. 즉, 재미있으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낯설음이 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

호우시절 (블루레이)

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2009년)은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담은 시 같은 영화다. 갑자기 내린 비처럼 우연히 그리운 사람을 만나 사랑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을 보면 '그 길위로 그리움의 향기가 가득 피어난다'는 싯구가 생각난다. 둘이 걸으며 추억을 쌓았던 길을 혼자 걷는다면 남는 것은 그리움 뿐이기 때문이다. 피천득의 '인연'이란 수필도 생각난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 법한 일도 세상에는 많기 때문. 그런 점에서 영화는 시처럼 수필처럼 흘러간다. 다만 문학과 다른 점은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는 점이다. 훗날 둘의 미래는 관객의 상상에 맡긴채로 열린 결말로 맺었다. 그만큼 긴 호흡의 안정적 여백이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외출' 등에서 보여준 별다른 ..

완득이 (블루레이)

이한 감독의 '완득이'(2011년)는 배우의 캐스팅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제대로 보여준 영화다. 깊은 속내를 거친 말투로 표현하는 선생 동주를 연기한 김윤석이나 다문화가정의 아이 완득이를 맡은 유아인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가 제대로 살았을까 싶다. 그만큼 두 사람의 연기는 실제 생활을 보는 것 처럼 자연스러웠다. 그 덕분에 원작에서 비중이 많지 않은 동주는 영화 속 비중이 대폭 늘어났다.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가난과 장애, 다문화가정이면서도 결손가정인 집안에서 자란 18세 고교생의 이야기를 다뤘다. 마치 우리 시대의 질곡을 모아놓은 축소판 같은 설정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인데도 불구하고 부담없이 긴 호흡으로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원작과 영화가 권투선수의 잽처럼 가벼운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