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김영호 5

결혼은 미친 짓이다 (블루레이)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년)는 계몽적이거나 위선적이지 않아서 좋다. 올바른 사랑이나 인생의 참된 가치관에 대해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당시 세태를 솔직하게 보여줄 뿐이다. 이만교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결혼 따로, 연애 따로인 현대 남녀의 솔직한 사랑을 다뤘다. 제목은 역설적으로 결혼이 여러가지 조건을 따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더불어 진실된 사랑보다는 조건이나 형식에 얽매인 결혼제도의 맹점을 꼬집는다. 유하 감독의 이런 비판적 현실관은 나중에 '말죽거리잔혹사'를 통해 학교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위선적 폭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결혼 제도에 대해 지극히 냉소적인 판타지다. 여주인공이 두 집 살림을 하는 이유도 조건에..

밤과 낮 (블루레이)

홍상수 감독의 여덟 번 째 영화 '밤과 낮'(2008년)은 이중성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딱히 이중성을 다룬 영화라고 단정하기 힘든 이유는, 그의 영화는 보는 사람마다 워낙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다면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우연히 대마초를 얻어 피웠다가 잡힐까봐 파리로 몸을 피한 어느 유부남 화가의 이야기다. 설정부터 범상치 않아 웃음이 나온다. 이 작품은 서로 대립하면서 묘한 긴장관계를 불러 일으키는 이중적 요소들이 등장한다. 우선 서로 댓구를 이루는 제목부터 그렇다. 하루를 구성하는 밤과 낮은 상호보완적이면서 서로 함께할 수 없는 분리적인 요소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성남(김영호)과 아내 성인(황수정)이 있는 서로 다른 장소인 파리와 서울의 시간대를 의미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공간의 존..

완벽한 파트너

연애가 창작의 원천이 될 수 있을까. 창작의 영감을 구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박헌수 감독의 '완벽한 파트너'(2011년)는 이를 소재로 다룬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한계에 부딪친 시나리오 작가와 요리연구가가 젊은 피들과 연애를 통해 서로에게 필요한 아이디어의 물꼬를 트는 이야기다. 창작의 고통이 현실감있게 다가오는 것은 감독의 경험이 많이 반영됐기 때문. '결혼이야기' '싱글즈' 등 히트작들의 각본을 쓴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감독은 시나리오 강사 시절 가르친 방법들과 요리 강사인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적절하게 녹여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창작의 원천이 연애라는 점이다. 당연히 섹스가 주를 이루다 보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것도 나이 차이 나는 선생과 제자..

하하하 (DVD)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2009년)는 제목 그대로 그 황당함에 하하하 웃게 되는 영화다. 언제나 그렇듯 홍 감독 특유의 엉뚱함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의 영화를 여러 편 보았으니 이제는 익숙할 만도 한데, 언제나 그렇듯 그 엉뚱함이 낯설면서도 유쾌하다. 이 영화는 구성이 독특하다. 청계산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와 후배가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들이 최근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풀어간다. 그들이 각각 따로 경험한 낯선 이야기 속에는 공교롭게 두 사람이 동시에 존재한다. 서로가 서로를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한 셈이다. 참으로 희한하면서도 기발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주체적인 삶이 타인에게는 객체일 수 있고, 반대로 그들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미인도

조선시대 풍속화가였던 혜원 신윤복이 여자라는 가설에서 출발한 영화 '미인도'(2008년)는 금기시된 사랑을 다루고 있다. 남장 여인인 신윤복이 장돌뱅이 강무, 스승인 김홍도와 벌이는 삼각관계는 동성애와 사부 간의 위험한 사랑놀음이다. 결국 사랑 그 자체를 순수하게 그려보고 싶다는 신윤복의 대사처럼 영화 속 사랑은 그저 종이 위에 머무는 그림이 되고 만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지 못하고 공허한 것은 철저한 팩션이기 때문. 신윤복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거의 없고, 그의 그림이 여성적이라는 이유로 여자로 만들어버린 영화속 설정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허구일 뿐이다. 여기에 질투에 눈이 먼 스승이 끼어들고 암투가 빚어지면서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식의 비극으로 치닫고 만다. 그만큼 구성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