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김효진 6

끝과 시작

민규동 감독의 '끝과 시작'(2013년)은 옴니버스 영화 '오감도'에 수록된 같은 제목의 네 번째 에피소드를 확대한 작품이다. 내용은 큰 줄거리는 같지만 일부 소소한 부분이 달라졌다. 단편은 재인(황정민)과 나루(김효진)가 자동차에서 정사를 벌이다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장편은 재인의 아내인 정하(엄정화)가 자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재인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또 재인과 나루의 이야기가 실은 동창회에서 만난 재인이 정하에게 구상 중인 작품을 들려주는 내용이다. 즉 액자 소설처럼 피카레스크식 구조를 갖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민 감독은 이를 상상이 현실로 되풀이되는 식으로 구성했다. 특히 과거 재인이 정하에게 들려준 상상 속 이야기가 미래에 재인과 정하가 결혼한 뒤 현실화된..

천년호

한 켠에 쌓아 둔 DVD 타이틀 속에서 이광훈 감독의 '천년호'(2003년)를 발견했다. 아마 제작사에서 받아 놓고 미처 보지 못한 모양이다. 제목만 보면 신상옥 감독이 1969년에 만든 동명의 공포물이 생각 난다. 당시 신 감독의 '천년호'는 시체스 영화제에서 황금감독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고,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한 작품이다. 신라 진성여왕이 짝사랑한 장수를 차지하기 위해 그의 부인을 성 밖으로 내쫓아 호수에 빠져 죽게 만드는데, 여기에 천년 묵은 여우의 원혼이 씌워 복수하는 내용이다. 이 감독의 '천년호'는 바로 신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이 감독은 한국의 전통적인 귀신 이야기인 천년호를 고대 전설이 깃든 판타지물로 슬쩍 바꿨다. 우선 천년 묵은 여우를 뜻하는 원작의 제목을 천년 묵은 호수를 ..

돈의 맛 (블루레이)

임상수 감독이 전작 '하녀'에 이어 '돈의 맛'(2012년)에서도 가진 자들의 부도덕함에 메스를 들이댔다. 이번에 겨냥한 상대도 역시 최상위 1%에 해당하는 부유층이다. 전작에서 전도연이 그들의 부도덕함을 낱낱이 살펴보는 고발자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하인 격인 김강우가 맡았다. 영화는 요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돈에 얽힌 병폐들을 집약했다.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죗값을 치르지 않기 위해 벌이는 권력층을 향한 뇌물공세와 문란한 성생활 및 마약,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도덕 불감증까지 총동원됐다. 뿐만 아니라 부유층과 바람난 가정부로 필리핀 여자를 선정해 점점 늘어나는 동남아 노동자들의 문제도 다뤘다. 이 모든 것을 임 감독은 돈 때문에 벌어지는, 돈의 맛에 취한 부작용으로 봤다. 그런데 욕심이 과했다..

돈의 맛

임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언제나 욕망에 천착한다. '하녀'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처녀들의 저녁식사' 등 그의 작품들은 항상 돈과 섹스, 권력 등 가장 구질구질한 욕망을 직시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메스를 들이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직설적인 화법은 특별한 쾌감을 선사하며 화제를 뿌린다. 그러나 잘못 들이댄 메스는 오히려 고통만 키운다. '돈의 맛'은 그런 작품이다. 잘못 스친 칼날이 사방 가득 역겨운 피비린내만 풍겼다. 남성판 '하녀', 아니 '하인'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재벌가에서 온갖 궂은 일을 처리하는 집사 같은 청년이 보게되는 잘못된 부자의 삶을 다뤘다. 하지만 최상위 1%의 모습을 다뤘다고 하기엔 너무 피상적이다. 부도덕한 성관계, 권력층..

영화 2012.05.20

누구나 비밀은 있다 (SE)

'누구나 비밀은 있다'(2004년)는 장현수 감독이 흥행을 위해 선택한 작품이다. '걸어서 하늘까지' '게임의 법칙' '본투킬' 등 남자들의 거친 세계를 다룬 영화를 주로 만든 장 감독이 흥행을 위해 선택한 코드는 섹스와 코미디다. 매력적인 청년(이병헌)이 세 자매(추상미, 최지우, 김효진)를 만나 다중으로 얽히는 내용은 제라드 스템브리지 감독의 '어바웃 아담'을 리메이크한 것. 메인 배우들 외에 정보석, 공효진, 탁재훈, 정준하 등 다양한 배우들의 깜짝 출연과 애니메이션 같은 화면 구성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정작 감독이 노린 섹스와 코미디라는 흥행 코드는 그다지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화려한 성 담론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제대로 웃기지도 못하기 때문. 장 감독은 사람..